북한이 우라늄 핵시설 공개와 연평도 포격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놓은 뒤 느닷없이 핵사찰 수용을 약속하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으나 미국은 무덤덤했다. 오히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라"고 북한을 더 압박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0일(이하 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것을 지난 수년간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보다는 행동에 의해 우리의 정책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북한이 방북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단의 방북 재허용과 핵 연료봉의 외국 반출을 약속했다고 CNN이 보도한 데 대한 국무부의 공식 반응이었다.

이는 도발-유화 공세-대화-약속 파기-도발을 되풀이해온 북한의 전술에 다시 휘말리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로 해석된다.

크롤리 차관보는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IAEA 사찰단의 방북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그 입장을 IAEA에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리처드슨 주지사와 같은 민간 방문자에게 전달한 내용이나 말에 따라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강조하는 북한의 행동은 비핵화를 위해 이미 합의한 2005년 9 · 19 공동성명 등의 의무 사항 준수,남북 관계 개선 등이다.

크롤리 차관보는 남북 간 군사 핫라인 가동과 남북 및 미국이 참여하는 분쟁지역 감시를 위한 군사위원회 설립 문제에 대해서도 "우선 북한이 역내 긴장을 완화시키고 소통을 증진시키는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연평도 사격훈련에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꼬리를 내린 것과 관련해서도 "한국의 훈련은 도발의 구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라고 덧붙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의 연평도 훈련 후 자제와 대화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또 내놨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유관국에 최대한 자제를 유지하고 책임있는 태도로 사태 악화를 피해달라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재차 촉구하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를 서울과 평양에 파견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이날 이틀째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한반도 문제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19일에는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 긴장 완화 문제를 놓고 8시간30분 동안 마라톤회의를 가졌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러시아는 반 총장의 특사 파견 등이 포함된 의장성명 채택을 원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