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방송 기술이 등장할 때면 늘 가전업계와 콘텐츠업계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관련 시장이 활성화하려면 콘텐츠와 가전기기가 같은 시기에 양산돼야 하는데 서로 상대방이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탓이다. 가전업계는 "새로운 기술을 담은 콘텐츠가 많아야 TV를 팔 수 있다"고 하고,콘텐츠업계는 "수상기가 충분히 보급돼야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맞서는 식이다. 고화질(HD) 방송이 나왔을 때,풀HD가 등장했을 때에도 이는 어김없이 반복됐다. 3D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초 영화 아바타를 시작으로 급성장할 것처럼 보였던 3D 시장 성장세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도 본격적인 투자 시기를 저울질하는 업계 간 눈치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과감한 투자로 3D산업 성장 유도

한국경제미디어그룹이 주도하는 종합편성채널 HUB가 향후 5년간 3D 콘텐츠 제작에 1000억원을 투입하고 2014년 3D 전용채널을 설립키로 하는 등 과감한 투자계획을 세운 건 "누군가는 눈치보기의 고리를 끊고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수해 나가야 3D 산업 활성화를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HUB가 한국 3D 산업을 성숙시키고 태동하는 글로벌 3D 시장을 선점해 명실상부한 3D 콘텐츠의 중심(hub)이 되겠다는 포부다.

HUB의 3D 콘텐츠 투자 계획은 업계 관계자들이 "무모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을 만큼 공격적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총 1073억원을 쏟아붓는다. 이를 통해 HUB 전체 편성 중 3D 콘텐츠 비중을 개국 첫해인 2011년 3.5%에서 2015년 20%까지 늘릴 계획이다. 2015년 국내 콘텐츠의 20%를 3D로 전환하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3D 콘텐츠 육성계획'에 부합하기 위한 목표치이기도 하다.

장르별로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HUB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100% 3D로 제작한다. 한경KLPGA챔피언십 등 HUB가 중계권을 확보한 스포츠 프로그램도 3D 제작 대상이다. 또 교육,관광,의료 · 건강 등 3D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교양 프로그램도 3D로 제작해 방영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등 TV 업체와 협력

문제는 기술적으로 HUB가 3D 콘텐츠를 3D로 방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분간은 3D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2D로만 방영이 가능하다. 이는 HUB 3D 사업의 약점인 동시에 기회다. 일반 콘텐츠에 비해 제작비가 30%나 더 들어가는 3D 콘텐츠를 국내 및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내다 팔아야 할 이유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스카이라이프 등 플랫폼 사업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3D 전용채널에 HUB가 제작한 3D 프로그램을 판매한다. 이를 위해 스카이라이프와 전략적 제휴도 체결했다. 해외에서는 일본 위성방송 스카이퍼펙트,영국 위성방송 비스카이비(BskyB),미국 디스커버리채널 등이 운영하는 3D 채널이 공략 대상이다. 이 중 일본 스카이퍼펙트는 HUB의 제휴사이기도 하다.

HUB 3D 사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TV업계와의 협력 모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북미 3D TV 시장에서 81.9%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HUB는 삼성전자 LG전자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3D 콘텐츠를 적극 제공키로 합의했다.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한국산 3D TV를 HUB 3D 콘텐츠 유통의 플랫폼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고품질 3D 콘텐츠가 삼성의 3D TV 판매량 증대에도 기여하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이같이 공격적인 콘텐츠 유통을 통해 글로벌 3D 방송 시장을 선점하는 동시에 HUB는 2014년 국내에서 3D 전용채널을 설립한다. 3D 콘텐츠의 안정적인 유통 경로를 확보하는 한편 '이 채널을 보면 3D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시청자들의 3D 시청 습관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HUB 제작물 외에도 국내에서 만든 3D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방영해 한국 3D 콘텐츠 산업의 안정적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2015년에는 3D 안경 없이도 TV를 통해 3D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무안경 방식'이 상용화할 것"이라며 "2014년에 3D 전용채널을 설립해 본격적인 3D시대에 대응하겠다는 HUB의 계획은 시기적으로도 매우 잘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유창재/박종서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