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지출로 1조5천억弗 적자
채무불이행 경고에 대책 부심

주(州) 및 카운티.시(市) 등 미국의 지방정부 재정에 커다란 적신호가 커졌다.

지방정부의 재정 위기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그 정도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부 주지사는 재정 탕진에 대한 `최후의 심판일(the day of reckoning)'이 임박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미 국민들이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함으로써 재정악화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22일 미국의 예산감시 민간단체인 `예산정책센터(CBPP)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뉴욕 등 48개주의 2010 회계연도(2009년 7월-2010년 6월) 예산적자는 총 1천91억달러(약 221조원)로 사상 최대에 달했다.

이는 전체 주정부 예산의 29%를 차지한다.

전체 주정부 예산적자는 2011회계연도(2010년 7월-2011년 6월)에도 46개주 1천300억달러, 2012회계연도엔 40개주 1천113억달러로 추산됐다.

예산적자액을 아예 발표하지 않는 노스 다코다주와 추정치를 자체 집계 중인 알래스카.아칸소.몬태나주까지 합하면 2011회계연도 적자는 1천600억달러, 2012회계연도 적자는 1천400억달러로 늘어난다.

2009, 2010, 2011 등 3개 회계연도를 합친 총 적자규모는 4천300억달러로 추정됐다.

CBS 방송은 주정부 적자가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경기침체로 재정수입이 감소한 지난 2년 간 걷힌 세수(稅收)보다 약 5천억달러(약 577조원)를 더 썼기 때문이라며 1조달러의 공적 연기금 적자까지 합치면 50개주의 총부채는 약 1조5천억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간 주정부들은 매년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경기부양자금 수백억달러에 기대어 그럭저럭 버텨왔으나 이마저도 내년 초부터는 끊긴다.

전문가들은 흥청망청 쓴 대가를 치르는 날이 도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방정부의 부채 수준은 뉴욕 금융가(월 스트리트)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구매력이 연방정부보다 높은 지방정부들의 재정위기가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고,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앗아갈 것으로 믿고 있다.

차입금을 갚기 위해 또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많은 주 및 시 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이나 지급유예(모라토리엄) 상태에 빠지기라도 하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가 일각에서는 주정부의 재정파탄(디폴트)을 막기 위해 대규모 구제금융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나 워싱턴 정가의 그 누구도 이를 원치 않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내총생산(GDP)이 러시아보다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2012회계연도 예산적자가 190억달러(주의회 입법분석관실 추산)로 예상되고 있다.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수준(junk status)이 되어가고 있다.

등록금을 32% 인상한 주립대학보다도 공무원연기금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이런 캘리포니아를 `린제이 로한 주(州)'로 불렀다.

여배우 린제이 로한의 낭비벽을 빗댄 표현이다.

빌 로키어 캘리포니아 주재무관은 지난 20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에 기고한 글에서 2011회계연도 주정부 전체수입이 894억달러로 교육비 지출액 360억달러를 빼도 534억달러가 남는다며 이 돈으로 채무상환(66억달러)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많은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애리조나 주정부는 31억달러(2011회계연도)의 적자 해소를 위해 주의사당 및 주대법원 청사 등 공공건물 일부를 개인투자가들에게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해 쓰고 있다.

장기이식을 위한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지원비도 대부분 삭감해 버렸다.

미국에서 세금이 가장 많다는 뉴저지의 적자는 107억달러에 이른다.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는 지난 10월 뉴저지와 뉴욕 맨해튼을 연결하는 철도터널 공사(90억달러 규모)를 중단했다.

경제를 되살리고 6천명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었지만 공사비 재원을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핵심은 돈이다"라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급할 돈도 없고, 돈을 구할 길도 없다.

정말 나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정부가 주정부를 위해 더 이상 지원할 여유가 없다.

위기상황과 최후의 심판일(재정파탄)이 시차를 두고 모든 지역(주)에 도래할 것"이라며 "50-100개 지자체에서 총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디폴트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방 재정적자는 2009회계연도 1조4천억달러, 2010회계연도((2009년 10월-2010년 9월) 1조3천억달러에 이어 2011회계연도 1조2천억달러, 2012회계연도 1조달러, 2013회계연도 9천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누적 국가채무는 13조8천억달러에 이른다.

작년 시행된 연방정부의 경기부양용 8천여억달러 중 지방정부 보조금 1천600억달러도 내년 봄이면 완전 고갈된다.

일리노이주(2011회계연도 135억달러 적자)는 세수보다 2배 이상 지출하면서 당장 갚아야 할 50억달러를 6개월째 상환하지 못하고 있어 디폴트가 우려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2012회계연도 예상적자가 33억달러(뉴욕주는 90억달러 추정)로 공무원 인력을 1만여명 감축할 계획이며, LA시는 재정난 때문에 작년에 이미 교사와 교직원 약 9천명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전국지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지방정부들이 지난해 대부분 결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체 지방공무원의 1.3%인 25만8천여명을 감축했다고 전했다.

하와이주는 55억달러 상당의 호놀룰루 철로공사를 재고하고 있으며, 알래스카주는 50명이 사는 섬에 수억달러짜리 다리를 연결하려다 취소했다.

월가에서 가장 인정받는 재정부문 애널리스트인 메레디스 휘트니는 "가장 걱정스러운 주정부 문제는 안일함이다.

내가 보고 있는 어떤 것보다도 파장이 광범위하다.

주정부의 재정파탄은 미국에서 단일 사안으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미 경제에 최대 위협이 될 게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오래 전부터 대형 은행들의 붕괴를 예고해 명성을 얻은 휘트니는 사람들이 지방정부 재정위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데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라면서 "이제부터라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coo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