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 본격적인 싸움은 내년부터다. 올해 새 사령탑을 맞은 이후 군살 빼기에 집중한 KB금융은 그간의 성과를 보여주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경영진간 다툼으로 내홍에 시달렸던 신한지주는 사태 수습국면에 접어들어 'CEO 리스크'가 해소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을 집어 삼키면서 선두권 은행들과 덩치를 비슷하게 맞췄다. 은행들은 그동안 불거졌던 리스크를 조금씩 해소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어느 곳의 손을 들어 줄 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은행株 올 들어 11월까지 '마이너스' 수익률

이달들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은행주는 이전까지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됐었다. 올 들어 11월까지 코스피지수가 13.18% 오르는 동안 은행계 지주사로 구성된 KRX금융업종의 수익률은 -1.41%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국내 부동산시장 침체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재정위기 등 대외적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수급 면에서는 올해 내내 한국 주식을 샀던 외국인이 은행주만 외면했고, 펀드 환매로 시장 주도주 중심의 대응이 불가피했던 기관은 은행주를 살 여력이 없었다.

은행주의 부진은 스스로 자초한 탓도 있다. KB금융의 경우 새 회장 선임을 놓고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내정 직후인 지난 6월 우리금융 인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 주가급락를 초래했다.

신한지주는 지난 9월 은행장이 사장을 검찰에 고소하는 '충격적' 사태에 휩싸였고, 이는 가장 모범적이라 평가받던 신한지주의 경영 지배구조에 근본적 의문을 갖게 했다.

또 하나금융의 최대주주였던 테마섹은 지난 10월 보유지분 전량을 돌연 매각,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은 지난 2분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대규모 충당금을 일시에 쌓은 탓에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12월 들어 주도주 부각 움직임…순환매 성격도 있어

냉담했던 시장 분위기가 바뀐 것은 이달 들어서다. 코스피지수가 상승 랠리를 이어가며 37개월 만에 2000선을 돌파하자 그 선봉에 은행주가 섰다. 'CEO 리스크' 해소 기대감에 신한지주가 12월 들어 22일까지 17.4%나 올랐고, 1년 신고가 기록도 최근 경신했다. KB금융은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주가가 박스권을 돌파, 작년 말 수준을 회복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작업을 본격화 한 뒤 탄력적인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증시 전문가들은 순환매 차원의 상승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은행 업종의 경우 시가총액이 커서 시장 전반이 오르면 계속 소외돼 있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말은 한 두번 시세가 날 수는 있어도 IT(정보기술)나 자동차와 같이 주도주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은행주의 최근 상승이 '반짝' 상승이 아닌, 본격 반등의 시작을 알리는 추세 전환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내년 시장을 이끌 주도주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올해 실적이 저점을 쳤다는 판단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배정현 SK증권 연구원은 "내년 1분기부터 대부분의 은행이 경상적 수준의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실적의 가장 큰 부담 요인이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충당금이 내년엔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서다. 이는 올해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한데 따른 것이다.

배 연구원은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의 경우 이미 지난 3분기 경상적 수준의 실적을 달성했다"면서 "4분기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돼 은행들의 실적이 안정화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선행지수와 같은 거시 경제지표들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은행주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선행지수는 내년 1분기 상승 반전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창욱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 지표가 반등할 경우 은행주 만큼 투자하기 좋은 섹터는 없다"며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회복 국면에서는 경기 민감 업종이 강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가가 싸다는 점도 은행주의 투자매력을 더욱 키운다.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 은행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배를 다소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황석규 교보증권 연구원은 "주요 8개 상장 은행의 향후 2년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가 14.4%로 예상되는데, 과거 ROE가 15% 수준일 때 은행 PBR은 1.5배까지 상승했다"며 "내년에 현대건설 매각에 따른 일회성 이익이 있기 때문에 다소 낮게 잡아도 1.34배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주가 대비 20~30%의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좋아질 일만 남은 KB금융ㆍ외환은행 인수 시너지효과 하나금융

주도주로 거론될 만큼 은행주의 강한 반등이 예상된다면 어느 종목이 가장 유망할까. 이달 들어 나온 증권사들의 은행 업종 리포트에서 가장 많이 최선호주(top pick) 추천을 받은 곳은 KB금융과 하나금융이다. 교보 대신 토러스 등은 KB금융과 하나금융이 가장 유망하다고 봤고,대우는 KB금융과 기업은행을, SK는 하나금융과 신한지주를 꼽았다.

은행 업종의 주가가 강세를 보인다면 대장주격인 KB금융이 가장 먼저 오르는 게 당연하다. KB금융은 올해 다른 은행들보다 훨씬 많은 충당금을 쌓았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까지 단행했다.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경우 지점이 많고 소매 영업에 강점이 있는 KB금융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어윤대 회장이 내년에는 본격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로 주목받고 있다. KBㆍ신한ㆍ우리 등 '빅3'에 여러모로 못미쳤던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시가총액, 지점수, 자산규모 등에서 명실상부한 '빅4'로 올라서게 된다. 내년에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 한 이후 하나은행과 합병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어 하나금융 주가가 더 올라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합병비율 산정 시 하나금융에 유리하려면 외환은행 주가가 내려가든지, 하나금융 주가가 상승해야 한다.

반면, 우리금융은 민영화 일정이 미뤄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새 주인이 결정돼야 큰 그림을 그릴수 있는데 민영화가 다시 무산될 경우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증권사들이 이 회사 주식을 사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힘든 것도 이때문이다.

신한지주는 이미 은행 평균업종 이상의 프리미엄(할증)을 받고 있어 투자매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신한지주의 주가 프미미엄은 현재 26%다. 이 비율이 최고일 때도 38%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은행 이외에 카드 증권 생명 등 비은행 계열사의 이익 기여도가 크고, 리스크 관리가 다른 은행에 비해 비교적 잘 되고 있으며, 정부의 입김이 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신한지주 만의 장점이란 평가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