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의 중국 어선 침몰사건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이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어선의 침몰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함께 인명 재산 피해를 한국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정부는 "우리 해경의 정당한 법 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라며 일축했다. 정부 당국은 이번 마찰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한 · 중 간 이견과 맞물려 양국 간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中선박 도주하다 침몰

사고를 조사 중인 해경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낮 12시40분쯤 해경 경비정이 군산 앞바다의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불법 조업으로 의심되는 중국 선박 15척을 발견,정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중국 어선은 한국과 중국의 공동관리구역인'잠정조치수역'으로 도주했다.

이 구역에서 우리 해경 요원들이 중국 어선 한 척에 올라 조사를 진행하던 중 중국 선원들이 폭력을 휘두르며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 해경 요원이 부상했다. 바로 그때 또 다른 중국 어선 한 척(요영호)이 우리 경비정 옆쪽으로 충돌,전복됐다. 충돌한 배에 타고 있는 선원 10명 가운데 5명은 중국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나머지 5명 중 1명은 사망,1명은 실종,3명은 우리 경비정에 의해 구조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中 "불법 조업한 적 없다 "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어선 요영호의 침몰과 관련,책임자 처벌은 물론 인명과 재산 피해를 한국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측은 중국 어선들이 우리 EEZ 내에서 불법 조업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사건 발생 사흘 뒤에 갑자기 한국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한국의 연평도 사격훈련과 관련,중국이 간접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동시에 △중국 네티즌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이중포석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네티즌들이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일본 해양경비선에 중국 어선이 충돌해 침몰한 것을 거론하며 중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는 것에 자극받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어선은 한국과 일본 군함의 실전훈련용 배인가"라는 네티즌들의 여론에 중국 정부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정당한 법 집행"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고는 우리의 정당한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라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 어선이 우리 EEZ 구역으로 넘어온 레이더 사진과 중국 선원들이 우리 경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 및 침몰된 요영호가 경비정으로 갑자기 선회해 충돌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확보하고 있다"며 "20일 중국 대사관 측에 비디오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비디오 화면을 분석한 결과 "중국 어선이 경비정에 충돌하기 직전에 경비정은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던 상황"이라며 "우리 경비정이 중국 어선을 고의로 충돌시켰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엔 해양법에 따르면 조업허가증을 갖고 있더라도 우리 EEZ에 들어온 외국 선박은 우리 해경의 정지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하며 이를 어기면 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대변인의 발언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으며 공식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다만 중국 측에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 측이 희망할 경우 조사 결과 및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중국 측 전문가의 참관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외교 당국자는 "이번 사건을 다른 문제와 엮어 외교적 마찰 문제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장진모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