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당한 현대그룹이 제기한 양해각서(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문이 22일 서울중앙지법 581호 법정에서 열려 한치 양보 없는 공방이 벌어졌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이미 MOU를 해지한 점을 감안,가처분 신청의 취지를 'MOU 해지 금지'에서 'MOU 효력 유지'로 바꿨다.

재판부는 24일 한 차례 더 심문을 열고 이르면 이날 가처분을 인용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권에서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예비협상자인 현대차그룹과의 협상이 빨리 진행되겠지만,받아들이면 매각 절차는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 "MOU 해지는 부당"

현대그룹 측은 채권단이 주주협의회 결의로 MOU를 해지하면서 주식매매계약(본계약) 체결안까지 부결시킨 것에 대해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매매계약 안건을 상정했다가 부결시킨 것은 애초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금융감독원과 정책금융공사 등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노골적인 권력의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채권단 측은 이에 대해 "현대그룹이 MOU에 따른 채권단의 대출계약서 등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다"며 "MOU가 어떤 사유로 해지되더라도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부제소 합의를 한 이상 현대그룹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비밀준수의무 때문에 대출계약서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프랑스 관련법에 따르면 나티시스은행의 고객인 현대그룹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적법하게 자료를 제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1조2000억원은 브리지론

법원 심리에서 현대그룹이 그동안 무보증 · 무담보 신용대출이라고 주장해온 1조2000억원은 임시 방편으로 받은 대출을 뜻하는 브리지론(단기대출)으로 밝혀졌다.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1조2000억원은 브리지론"이라며 "현대건설 인수 후 대출은 재무적 투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그룹 경영권 보호를 위한) 채권단 중재안은 현대건설 이사회와 주주를 완전히 무시하는 위법적인 것으로 그런 방안에 공범이 될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20일 넥스젠캐피탈(나티시스은행 자회사) 등 유럽 및 중동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2조원 규모의 현대상선 프랑스법인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건설 인수자금을 조달하고 나티시스은행 대출금을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그룹 대리인은 "나티시스은행과 넥스젠은 처음부터 현대건설 인수전에 함께 나설 생각이었다"며 "대출확인서를 통해 대출 금리가 연 6% 미만이라는 것을 소명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본안소송에서 법원에만 공개하는 조건으로 대출계약서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 측은 "빌린 돈을 대출금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문제가 크다"며 "1조2000억원을 자기자금인 것처럼 행세한 만큼 허위 신고 및 사기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8개 채권은행 실무자들은 이날 회의를 열고 법원의 2차심리 등을 고려해 주주협의 일정을 조절하기로 했다.

이현일/이태훈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