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니얼 퍼거슨(하버드대 역사학 교수 · 46)의 완력은 어디까지인가. 《증오의 세기》는 전작 《금융의 지배》 《콜로서스》에 이어 올 들어 세 번째 '강펀치'다. 늘 기성이론과 통념을 뒤집는 그의 문제 제기는 이번에도 어김없다. 역사와 경제,정치를 종횡무진하며 전개하는 논리는 거의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가 왜 당대 최고의 지성인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퍼거슨은 이 책에서 야누스적인 20세기를 일갈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한 시기가 어떻게 끔찍한 살육의 장으로 변했을까. 연평균 성장률이 이전 시기에 비해 10배 이상 높아졌고,민주주의와 복지 개념이 널리 확산됐는데도 '죽음의 잔치'는 계속됐다.

제2차 세계대전,스탈린의 대숙청,한국전쟁 등이 그런 사례들인데,타자 혐오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정치 · 경제적 요인이 결합해 전쟁을 불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9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속엔 최근 100년간 발생한 학살의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인간을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은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민족 및 인종갈등,경제적 변동성,제국의 쇠퇴다. 20세기 내내 인간은 신체적으로 서로 다른 인종을 별개로 생각하며 인간 이하로 취급했고,인종 간에는 극복할 수 없는 유전법칙(우생학)이 존재한다고 믿었다고 그는 분석한다. 히틀러로 상징되는 극단적 인종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는 급기야 대량학살과 인종청소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1940년대 학살이 자행된 지역에는 대부분 여러 민족이 정착해 살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그는 중동부 유럽을 '20세기의 살육장'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지역으로 꼽는다.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경제적 변동성이 인종 · 민족 갈등과 관련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경제성장률,가격,금리,고용 등의 변동성이 사회적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것인데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더욱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거나 빈부격차가 커지면 소수 집단을 공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마지막 요소로 내세운 것은 제국의 몰락으로,이는 다름 아닌 서구세계의 몰락을 의미한다. 전작 《콜로서스》에서 제국을 적극 옹호해 떨떠름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 와서 몰락이라니!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제국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제국의 주체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그래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자본주의 모델의 승리선언에 그는 콧방귀를 뀐다. 이제는 동양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소득 격차는 좁혀지기 시작했고 서양의 상대적 하락은 막을 수 없다. 다만 쇠퇴하는 미국과 급부상하는 중국의 긴장감 속에서 어떤 불미스러운 충돌이 일어날지는 두려운 일이지만.

"지금도 인류는 진보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보의 시대를 왜 피로 물들여야 하는가?"라고 그는 반문한다. 이 책은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주제를 통찰하면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미래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덧붙이자면,이 책은 '퍼거슨 마니아'들에게 지적 향유를 뿌려줌으로써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확인시키고 있다.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의 방대한 스케일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오감하다면 지나친 말일까.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