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겐 다른 일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기름때 묻혀가며 휴일도 없이 평생을 현장에 파묻혀 살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이균길 서한안타민 대표 · 65)

"이렇게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한번도 '다른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매일 밤 파김치가 돼 귀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훗날 그 짐을 덜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해왔거든요. "(이형석 과장 · 31)

사업 초창기에 아버지는 '자금이 바닥났다'며 '돈 구해오라'고 어머니를 닦달했고,어머니는 빚 얻으러 갔다 허탕치고 어깨가 축 처져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날 집안 분위기는 오죽했을까. 이런 모습을 보면서 커온 이형석 서한안타민 과장은 "빨리 어른이 돼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겠다"고 결심했다. "자식에겐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생각과 달리 아들은 가업을 승계하겠다는 뜻을 일찍부터 품고 있었다. 고교시절부터 방학 때마다 공장에서 아버지 일손을 도왔다. 자금압박 등을 꿋꿋이 견뎌낸 아버지의 기업가 정신과 가업을 계속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아들의 책임감이 오늘날 서한안타민을 불연 내장마감재 분야 국내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실패 거듭하며 연구 · 개발로 위기 돌파

서한안타민은 악기회사에 다니던 이균길 대표가 1983년 인천 부계동 약 30㎡ 규모 임대사무실에서 직원 2명을 데리고 출발했다. 처음엔 피아노에 사용하는 목재의 접착 강도를 높여주는 보강재 '베커(backer)'를 수입해 팔았다. 이를 3년 만에 국산화했고,현재는 전 세계 베커시장의 90%(150만달러 상당)를 점유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90년대 초반까지 피아노 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생겨났지만 품질로 승부해 우리 회사만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1994년 13억원을 들여 남동공단으로 확장한 뒤 라미네이트 시트와 인쇄회로기판(PCB)보드 밑바닥에 붙이는 백업보드를 만들면서 품목 다양화에 나섰다. 매출 50억원에 불과했던 외환위기 시절엔 외상대금 10억원을 떼이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단 한 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고 회사를 살려냈다.

이 대표는 "한창 어려울 때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사업 그만하면 안 되느냐'고 말할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며 "아들한테는 내가 앉아 있는 바늘방석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일했다"고 털어놨다.

2000년 초부터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느라 귀가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10억원 넘는 돈을 투자해 2002년 4월 불연 내장마감재(브랜드 '안타민') 개발에 나설 때다. 하지만 테스트 과정에서 불에 타기도 하고 건물에 시공한 시제품에서 하자가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대표는 "다시 1년간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기술을 보완해 900도에서도 타지 않고 조립식으로 시공이 간편하며 색상까지 넣어 인테리어 기능이 있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안타민은 이 회사 올해 예상 매출 150억원의 40%를 차지하는 주력제품이 됐다.

◆부전자전 대물림 경영

이 대표는 국내시장 규모는 작지만 안타민(1㎡당 시공비 포함 4만원) 매출이 안정화되자 전역 후 대학에 복학한 아들을 2006년 회사로 불러들였다. 이 과장은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부름을 받고 곧바로 휴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내년에 복학,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다.

이 과장이 입사해 첫번째 맡은 건 여직원을 도와 영수증을 관리하고 배달을 하는 허드렛일이었다. 하지만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2년 전부터는 중국 일본 등을 대상으로 한 해외무역을 맡았다. 이 과장은 "무역 업무를 하면서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이 과장은 아버지한테 신문과 TV에 광고를 하고 전시회에도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틈날 때마다 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잘랐다. 중소기업이 광고를 내고 전시회에 나가는 것은 비용부담만 된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었다. 이 대표는 "아직 논쟁 중이지만 아들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새해엔 아들 의견을 따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인력채용을 두고도 의견충돌을 빚었다. 이 과장은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해외영업부를 설립하고 급여를 더 줘서라도 전담 인력을 뽑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우수 인력을 뽑아봤자 일 배우면 떠나 결국 우리 같은 중소기업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했다. 중소기업일수록 해외시장을 뚫을 우수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 과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달 이상 논쟁을 벌였고 급기야 "아버지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단호한 아들 생각에 이 대표도 뜻을 굽혔다.

하지만 이 대표도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30~40명이 찾아왔지만 중소기업에 눈높이를 맞추려는 사람이 드물어 채용이 어려웠다. 설사 뽑아도 얼마 뒤 그만두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갔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채용과정을 밟았고 결국 마음에 드는 2명을 뽑았다"고 소개했다.

최근 이 과장은 미래 성장산업인 태양전지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아버지를 설득 중이다. 하지만 여력도 없고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며 이 대표는 반대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미래 사업 전략을 마련할지 관심이다.

남동공단(인천)=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