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 금융공기업인 한국예탁결제원이 업계의 원성을 사고 있다.

갑작스러운 수수료 인상은 물론, 특정 업무를 독점하면서 수수료를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예탁결제원이 국내 유일의 수탁기관이기 때문에 반발은 커녕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예탁결제원은 지난달 초 국내외 17개 금융투자회사에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겠다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장외파생상품은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주식워런트증권(ELW) 등이다. 건당 발행액이 90원이었지만 이를 5만원으로 전격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인상률은 무려 5만5455%에 달한다.

예탁결제원의 인상 논리는 이렇다. 장외파생상품들이 처음 도입될 때는 시장활성화 차원에서 낮은 수수료를 받았지만 이제는 시장이 활성화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것.또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지난해 장외파생상품 인가를 받은 일부 금융투자회사들은 다른 기관을 통해 발행수수료를 건당 10만원씩 내고 있다. 이와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펄쩍 뛰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수수료가 내려가는게 상식이라는 논리에서다. 실례로 펀드판매 수수료는 초기에는 높았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업계 스스로 수수료를 인하했다.

예탁결제원은 발행업무를 대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수수료 인상을 통보했다. 인상기일을 한 달여 앞두고 단행된 '통보'이기 때문에 업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A증권사 관계자는 "예탁결제원은 수수료를 높이는 대신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약속이나, 업계와의 사전협의도 없었다"며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 방침에 대한 반발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 역시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조기종료(KOVA) 워런트 등 다양한 ELW 시장을 개발하려는 시점에서 예탁결제원의 이 같은 방침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인상한다는 취지의 공문은 발송했으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었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이어 이 관계자는 "문서 발송 후 의견수렴을 위한 설명회도 개최했고 현재도 관련된 기관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인상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예탁결제원의 수수료와 관련,업계가 불만을 갖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주식대차거래 중개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면서 매년 100억원대의 수수료 수익을 거두고 있다.

주식대차거래 중개는 대차거래 즉 '공매도' 등을 중개하는 업무다. 어떤 주식을 빌리고자 하는 기관에게 그 주식을 빌려줄 기관을 찾아서 중간에서 연결해는 주는 것.

이 업무는 예탁결제원의 세이프(safe)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게 되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이 이를 이용한다. 국내에 이 서비스가 가능한 기관은 예탁결제원 외에도 증권금융,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KB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식대차거래 중개 업무의 대부분이 예탁결제원에서 이뤄지고 있다.업계는 국내 주식대차거래 중개의 80% 이상이 예탁결제원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무성격이 공공의 이익도 아닌데 예탁결제원은 이 업무를 고집스럽게 가져가고 있다"며 "이는 높은 수수료 수익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예탁결제원은 국내 주식거래 내역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정보기관"이라며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 대차거래 중개 업무를 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예탁결제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유호상 증권대차파트장은 "자체적인 보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거래내역을 보고 중개를 한다는 것은 업계의 오해일 뿐"이라며 "지난해 감사에서도 이미 이런 점들이 해명됐다"고 호소했다.

외국의 사례와는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 유 파트장은 "외국은 대차거래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증권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국내 시장은 시장결제의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예탁결제원을 시작으로 대차거래가 이루어져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내 시장은 형성 과정이 외국과 다르기 때문에 예탁결제원의 독점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