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수자금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현대그룹을 중도 탈락시킨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자동차그룹과 매각 협상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현대그룹이 이런 결정에 반발해 낸 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모든 일정이 엉클어졌다. 매각 작업이 장기 표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고,채권단과 현대그룹,현대차그룹이 벌일 법정 공방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2일 처음 열린 심문에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차입한 1조2000억원은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을 사실상 SPC(특수목적법인)로 활용한 브리지론이라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대형 글로벌 인수 · 합병(M&A)의 경우에 널리 행해지고 있는 형식 중 하나'라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현대그룹의 이런 설명은 수긍하기 쉽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이지만,한때의 경영 부실로 10년 가까이 채권단 관리를 받은 현대건설의 새 주인이 되겠다고 나선 현대그룹 측의 이 같은 인식과 자세는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현대그룹의 해명은 본입찰 서류를 낸 시점에서 확정적인 자금조달 계획이 없었으며 입찰서류에 기재된 자금조달 증빙은 그저 내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브리지론은 정식 대출 또는 투자(main financing)를 일으킬 것을 전제로 해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임시의 단기 대출을 말한다. 그것은 상식에 속한다. 결국 현대그룹이 애초 입찰서 등을 통해 주장한 '자기자금'이 아닐 뿐만 아니라,논란이 불거지자 말을 바꿔 주장한 '일반 차입금'도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자백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대그룹이 입찰서에 컨소시엄 멤버로 기재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은 현재 시점에서 이름뿐인 SPC일 뿐이고,실제 투자자는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면 정해진 실제 투자자를 숨겼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대건설이 정체불명의 외국계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현대그룹은 이와관련,얼마전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에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하고 유럽과 중동 등의 투자자들과 접촉중이라고 설명했다. 유상증자든,정식 대출이든 외국계의 정체불명 자금이 현대건설의 인수에 쓰인다는 얘기다. 현대그룹은 입찰 참가 때 문제가 된 자금은 브리지론이며,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은 사실상 SPC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한다. 현대그룹은 이 같은 사실을 숨김으로써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해 정한 채점표 중 자기자금 조달비중,조달이 확정된 자금의 비중,거래종결 안전성 등의 평가항목에서 감점을 회피했다. 브리지론을 거쳐 정식 대출 내지 투자가 이뤄질 경우를 상정한 자금조달 심사를 불가능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채권단의 컨소시엄 멤버 교체에 관한 승인권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현대그룹이 입찰서류에서 나티시스은행 예치금과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의 성격을 명확히 밝혔더라면 채권단은 애당초 이 돈을 인수자금 조달방법으로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고,불과 20시간 만에 현대그룹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주인찾기 방법과 절차를 놓고 채권단과 현대그룹이 법정에서 기약없이 싸움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대건설이 건강한 주인을 하루빨리 맞아 글로벌 건설회사,엔지니어링 기업으로 도약해가기를 바란다. 법원은 물론 브리지론 등 입찰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동시에 법리 싸움 때문에 현대건설 매각이 장기 표류하도록 방치해선 안된다는 목소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중렬 < 한국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