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두각을 보였던 재계 양대 라이벌이 내년에는 건설 분야에서 대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한판 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채권단의 손에 넘어간 현대건설은 10여년 만에 원래 주인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제 주인을 찾은 이후 예전과 같은 위용을 뽐낼수 있을 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린다.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등 삼성 내 건설 관련 계열사들은 올해 몰라보게 덩치를 키우면서 건설업 마저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 삼성엔지 주가 77% 상승…현대건설은 제자리 걸음

주가만 놓고 보면 올해는 삼성의 한판 승이다.

작년 말 5만6100원이던 삼성물산의 주가는 23일 현재 7만7700원까지 올랐다. 일 년 새 38.5%의 상승률을 보였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보다 더 높은 77.7%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현대건설 주가는 등락을 거듭한 끝에 제자리 걸음을 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12조원 가량으로 8조원에도 채 못미치는 현대건설 시가총액을 크게 웃돌고 있다. 예전에는 비교 자체가 힘들었던 삼성엔지니어링도 덩치가 급격히 커져 현대건설에 버금가는 7조6000억원 가량까지 시가총액이 늘어난 상황이다.

물론 삼성물산은 건설에 더해 상사 부문까지 포함돼 있고 삼성엔지니어링은 해외 플랜트 공사에 특화된 회사여서 현대건설과 단순 비교는 힘들다. 하지만 삼성 계열의 건설사들이 올해 약진, 현대건설 수준에 이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외수주 확대 기대감…삼성엔지>현대건설>삼성물산 순서

올해 건설사들은 힘든 한해를 보냈다. 국내 부동산 경기는 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고, 건설사들은 미분양 주택 해소에 온 힘을 쏟았다. 중동을 중심으로 한 해외 수주도 발주량 감소와 경쟁 격화 탓에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해외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화증권이 이달 초 추정한 내년 중동 지역의 공사 발주량은 올해 950억달러 대비 60% 이상 증가한 1562억달러에 이른다. KTB투자증권은 이보다 더 많은 2289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집계치를 내놓았다. 올해보다 훨씬 많은 발주가 있을 것이라는데 별다른 이견은 없어 보인다.

이 경우 해외 플랜트 엔지니어링에 강점이 있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최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동의 발주가 석유화학 부문에서 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기대감을 더 갖게 만든다.

박영도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엔지니어링의 내년 수주액은 올해보다 27% 증가한 14조원에 이르고, 매출은 59% 늘어난 7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영업이익도 45% 늘어 638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대적으로 국내 주택부문의 비중이 큰 삼성물산은 정연주 사장을 작년 말 삼성엔지니어링으로부터 영입, 본격적으로 해외쪽을 키우는 중이다. 이 회사는 최근 2015년 해외 수주액을 50조원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올해 해외 수주가 6조3000억원이니 상당히 공격적 목표다. 더구나 올해는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액 2조8000억원이 반영됐다.

이광수 한화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현재 해외에서 추진 중인 신도시 개발, 발전소 건설 등의 사업 분야는 범위가 넓고 금액도 커서 한 번의 수주로도 상당한 실적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현대건설도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을 해외에서 거두고 있을 정도로 해외 부문에 강점이 있다. 특히 우리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원전 수주 등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어 관련 수혜가 예상된다.

조동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내년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축소와 민간 부문의 주택공급 감소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주 증가에 힘입어 현대건설의 내년 총 수주액은 올해 대비 18.8% 증가한 24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종합하면 해외 수주에 따른 기대감은 삼성엔지니어링이 가장 크고,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순이라는 분석이 많다.

◆주인 잘 만나야 하는 현대건설ㆍ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에 선 삼성물산

이들 기업은 사업 외적인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새 주인 찾기에 들어간 현대건설이 그렇다.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현대그룹은 자금조달 방안 논란 속에 현대건설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고, 현대차그룹은 자신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새로 선정될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이번 현대건설 매각을 두고 채권단 안팎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현대건설의 가치가 달라지는 만큼, 투자자들이나 관련 업계에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때 현대건설 주가가 급락한 점 등에 미뤄 비춰보면 시장에선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져갔으면 하는 분위기다. 자금 여력이 상당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게 되면 현대건설의 성장을 훨씬 잘 뒷받침 할 것이란 기대감이 깔려 있다.

더구나 현대차그룹은 최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자동차 산업 내에서 입지를 더욱 키워가고 있다. 이런 성공적인 경영 시스템과 현대차그룹 특유의 저돌성까지 더해지면 현대건설의 성장세는 시장이 예상하는 것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이창근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알토란 같은 유무형자산을 유지하면서 재무건전성이 지속될 것이란 신뢰를 새 주인이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자금조달방안, 재무능력, 인수 시너지 등을 감안할 때 현대차그룹이 상대적으로 새 주인에 더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한종호 신영증권 연구원도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인수가를 제시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자금부담을 이기지 못해 현대건설의 기업가치를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며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사실상 박탈된 것이 현대건설에 잘 된 일이라고 진단했다.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의 지배구조 한 복판에 서 있다는 점이 주가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3.5%를 비롯해 제일기획 12.6%, 삼성카드 2.5%, 삼성테크윈 4.3%, 삼성정밀화학 5.6%, 삼성증권 0.3% 등 계열사 주식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가치를 모두 더해 20%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평가액이 9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현재 시가총액의 75%에 해당한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들은 상당히 중요할 역할을 할 전망이다. 예컨대 삼성물산이 지분 18.2%를 보유한 삼성SDS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이 다른 계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 내년께 상장이 추진될 것으로 증권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 경우 삼성물산의 보유지분 가치는 덩달아 크게 늘어나게 된다.

변성진 미래에엣증권 연구원은 "최근 일 년 새 삼성물산의 최고경영진이 모두 교체됐고, 얼마 전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신임 사장이 삼성물산의 고문을 겸하게 됐다"면서 "이에 따라 내년 이후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회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