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흘러간다. 제약업계에게는 유독 이 말이 실감나는 한 해였다.

제약업계는 2010년 혼란스러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약가인하 정책과 리베이트 규제 강화 등으로 제약업체들의 영업은 위축됐다. 여기에 시장의 방향성도 안갯 속이었다. 대형 제약사들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부진을 겪은 반면, 중소형 제약사들과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은 승승장구했다.

대장주인 동아제약한미약품의 주가는 곤두박칠쳤다. 동아제약은 그나마 나았지만 한미약품은 기업을 분할하고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경영 개혁에도 불구,본업에서 돈을 까먹었다. 이렇게 혼란한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셀트리온'이었다.

코스피 제약업종의 지수는 12월24일 현재 올해초 대비 7.50% 하락했다. 올해초와 비교해 동아제약은 -1.19%, 한미약품은 -3.22% 등으로 주가가 뒷걸음질쳤다.그러나 코스닥 시장의 분위기는 다르다.코스닥 제약업종 지수는 올들어 37.17% 상승했다. 셀트리온은 122.15% 올랐고 메디포스트는 163.80%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시장은 코스닥 시장이 부진했다지만 제약업종만은 예외인 셈이다. 셀트리온은 올해 코스닥 시장에서 1위로 자리를 잡았고, 시가총액 역시 4조원에 육박하면서 제약업종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바이오벤처 업체로 코스닥 시장에 뒷문(우회상장)으로 들어온 업체가 대장주로 떠오른 한 해였다.

◆셀트리온, 코스닥 대장株에서 제약업종 대장株로


셀트리온은 시류를 잘 탔고 흐름에 맞춘 사업을 제때에 전개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셀트리온은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를 임상실험중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치료제인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도 전임상을 완료했다. 6개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세포주를 개발하고 있고, 바이오의약품 매출순위 1~6위 품목의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의 파이프라인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인 판매망 구축도 한 몫을 했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일본지역의 판권계약을 마지막으로 선진국의 글로벌 유통망 구축을 완료했다. 북미, 유럽,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남미, 중국, 동남아, 러시아 등은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다. 내년 상반기까지 멕시코, 브라질 지역의 판매망까지도 확보하게 된다.

셀트리온은 각종 정책들이 새로 입안되거나 기존의 정책들이 수정되면서 수혜를 받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암환자 보장성 강화정책의 일환으로 항암제 보험급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허셉틴'에 대한 급여기준을 확대할 것으로 보여, 허셉틴의 매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오리지널의 매출액 확대는 바이오시밀러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수혜가 예상된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일본, 유럽 등 세계적으로 항체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제정이 1~2년 안에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은 최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셀트리온홀딩스(지주회사)와 셀트리온헬스케어(사업회사)로 인적분할했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셀트리온(바이오의약품 개발과 생산), 셀트리온헬스케어(글로벌 판매권 보유), 셀트리온제약(합성의약품 개발, 바이오시밀러의 국내 판권 보유) 등을 거느리게 된다.

셀트리온의 지주회사 전환은 2011년 상반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 같은 지배구조의 개선은 수익배분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또한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요인이었다.

실적도 뒷받침됐다. 셀트리온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515억원, 영업이익은 321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이 62.4%에 달한다. 지난 2분기의 영업이익도은 70.0%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 셀트리온의 매출액은 1800억원을 넘어서고 영업이익은 1000억원을 가뿐히 넘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김혜림 현대증권 연구원은 "셀트리온은 글로벌 수준보다 앞선 임상시험 진행과 선제적인 제품 출시가 강점"이라며 "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선점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지속적인 바이오시밀러 제품출시로 주가의 추가상승이 기대된다"며 제약업종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약가 인하·리베이트 쌍벌제 등 규제…한미약품 적자로 '타격'

셀트리온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해를 보냈다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한해를 보낸 제약주는 한미약품이었다. 한미약품은 규제에 대한 압박과 비용증가 등으로 올해들어 실적이 쪼그라 들었다. 그나마 낫다는 동아제약도 사정이 나쁘기는 매한가지였다.

사실 정부의 규제 변수는 매년 있어 왔다. 2006년부터 진행된 '약제비 적정화방안'이다. 그럼에도 약제비 비중은30%에 가까운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의약품 거래에 대한 관행을 뿌리뽑는 규제를 발표했다. 바로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이다. 지난 2월 발표된 이 방안에는 △리베이트 수수자 처벌강화(쌍벌제) △ 약제비 대한 약가인하 면제 △시장형실거래가 제도 시행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마케팅의 귀재, 개량신약의 선두주자 등으로 불리던 한미약품은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3분기에 영업손실이라는 성적표를 시장에 공개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현재 제약업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 대부분 한미약품을 추천종목에서 내린 상태다.

한미약품은 내수의 매출 부진과 연구개발비나 마케팅비 같은 비용이 증가하면서 고정비가 늘어났다. 비만체료제인 '슬리머'가 판매 중단되면서 재고폐기 손실, 수출중단에 따른 비용 등이 발생하면서 손실의 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미약품은 최근 대표이사 체제를 재편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존의 임선민 대표가 사임했다. 임성기, 이관순 대표 체제로 변경했는데 이 대표는 R&D를 총괄 사장이었다. '영업'을 강조했던 시대에서 'R&D'가 필요한 시기로 전환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미약품에게도 '개량신약'이라는 희망이 있다. 역류성 식도염치료제인 '에스메졸'이 임상시험을 완료했고, 고혈암 복합치료제인 '아모잘탄'이 내년 상반기에 시판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에 이들 신약들은 미국과 유럽에 출시도 가능할 전망이다. 또 항혈전제인 '피도글'이 영국 의약품안정청에서 최종승인을 받으면서 내년부터 유럽 7개국에 수출길이 열리게 된다.

동아제약은 같은 영업환경에서도 한미약품 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GSK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아제약은 지난 5월 GSK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일반병원에서의 판매는 물론 해외 임상 및 개발 등에서 공동으로 협력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실제 국내 시장에서 동아제약은 GSK의 품목을 공동 판매하고 있다. 돌려서 생각해보면 동아제약은 GSK를 통해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동아제약의 남은 과제는 글로벌 유통망에 끼워넣을 신약을 내놓은 것이다.

동아제약은 임상 3상의 신약이 3개에 달한다. 천연물 위장관 운동촉진제 'DA-9701'과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그리고 슈퍼 박테리아 타킷 항생제 'DA-7218'이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는 이미 수출된 계약금만도 누적으로(2006년 10월~2009년 8월) 3억1500만 달러에 달한다. 또 차세대 항생제인 DA-7218의 미국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완료될 예정이다.

정보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굵직한 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장의 향방을 확신하기 못했다"며 "하지만 약가인하 제도들의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제약사들의 마케팅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내년에는 매출 성장회복, 해외수출 및 신약개발 등으로 본격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