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양해각서(MOU) 유지 가처분' 2차 심문에서 "나티시스은행 예치금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국회나 감독기관 등에서 제기했지만 현대그룹이 해명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MOU 해지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나티시스은행 대출은 브리지론과 일부 비슷한 성격이 있지만 브리지론은 아니다"며 "인출에 제한이 없는 만큼 자기자금으로 문제가 없고 감점 요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채권단은 곧바로 "현대그룹은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을 당초 예금이라고 했다가 이후 무보증 대출,브리지론(임시 대출) 등이라 해놓고,이제는 브리지론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며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고 다시 반박했다.

법원은 29일까지 추가 자료 등을 제출받고 이르면 연내,늦어도 다음 달 4일까지는 가처분 소송에 대한 결론을 낼 방침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다음 달 7일까지 현대자동차그룹과 매각 협상을 벌이기 위한 절차 진행을 보류하기로 했다.

◆커지는 브리지론 논란

채권단은 변론에서 MOU 해지와 관련,"(현대그룹의) 미진한 증거 제출에도 계속 기회를 준 것인데 합당한 소명을 하지 못해 결국 기회를 회수한 것"이라며 "현대그룹의 태도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 대출확인서의 적법성에 대해서도 "입찰서류에 포함된 예금잔액증명서에 찍힌 서명과 나중에 제출한 대출확인서의 서명이 서로 다르다"며 "매각주관사인 메릴린치가 나티시스은행에 이에 대한 내용을 물어봤지만 확답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채권단은 "이번 매각이 불발되면 두번 다시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할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며 "현대차그룹이 다음에도 이런 금액(5조1000억원)을 제시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이 1조2000억원이 브리지론이 아니라고 밝힌 것과 관련,"본대출이 예정된 문자 그대로의 '브리지론'은 아니라도 이는 본질적으로 '가장납입(假裝納入)'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또 "(채권단이) 우선협상 대상자 평가 때 브리지론 사실을 알았다면 결과가 뒤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의 최후통첩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법원 판결 전까지 중재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압박했다. 채권단은 지난 20일 현대그룹과 MOU를 해지하면서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이어가는 대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은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서겠다고 제안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중재안은 소송 등을 피하고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안한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이행보증금(2755억원)까지 돌려줄 수 없는 분위기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본안 소송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단은 법원이 가처분 기각 결정을 내리면 지체 없이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현대그룹이 그 전에 중재안을 수용할 경우 현대차그룹과 현대상선 지분 처리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 측은 이에 대해 "검토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하종선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지난 22일 "채권단 중재안은 현대건설 이사회와 주주를 완전 무시하는 위법적인 것으로 그런 방안에 공범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호기/이현일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