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사는 A씨는 작년 이맘 때쯤 한 시중은행에서 연 4.9% 금리를 주는 1년 만기 특판예금에 가입했다. 가입금액은 10억원.그보다 1년 전인 2008년 당시에도 연 6%에 가까운 금리로 짭짤한 이자를 챙겼던 그였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시중은행들이 매년 앞다퉈 출시한 특판예금 상품이 거의 사라진 것.시중은행들마다 넘치는 유동성을 주체하지 못하다 보니 올해만큼은 특판예금을 내놓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미 코스피지수 2000포인트를 돌파할 만큼 뜨거워진 주식시장에 선뜻 들어가기도 영 부담스럽다. 총 자산 100억원대 부자인 그는 이미 펀드 등을 통해 상당한 액수를 투자해 놓고 있는 상태다.

그는 은행 프라이빗 뱅커(PB)들의 조언에 따라 일부 금액을 다른 투자처로 돌리기로 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그였지만 현실적으로 수익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억원 중 5억원은 금리가 낮더라도 다시 정기예금 상품에 넣기로 했다. 나머지 5억원은 절반씩 나눠 지수연동예금(ELD)과 단기성 예금상품에 가입할 계획이다.


◆금리 낮더라도 은행예금 선호

매년 연말 일제히 출시하던 은행 특판예금 상품을 통해 그동안 짭짤한 고수익을 올린 강남 부자들이었지만 올해만큼은 이 같은 재테크 궤도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역사적인 저금리 기조와 미국 정부의 양적완화 조치 등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은행들마다 특판예금 상품 판매를 자제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판예금의 주고객들인 이들 부자의 보수적인 성향으로 인해 만기가 된 특판 자금들이 다시 은행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그래도 최근 2~3주 새 은행 예금금리가 많이 올라온 상태"라며 "거액 고객에게 주는 우대금리까지 적용하면 그래도 연 4%까지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억원 이상 고액을 맡기려는 부자들은 은행 예금을 가장 선호한다"고 전했다.

김창수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 프라이빗뱅킹(PB)센터 팀장도 "총 재산이 50억~100억원에 달하는 부자들은 작은 리스크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그냥 은행 예금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보다 적은 20억~30억원대 자산가들은 그동안 연 5~6% 금리를 받다가 3% 중후반으로 주저앉은 금리로는 도저히 원금 보전 자체가 안돼 고수익 상품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자금 ELD · ELS로 유입

일부 부자들은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금액을 분산,ELD나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하기도 한다.
이관석 팀장은 "만기가 돌아온 금액의 70~80%가량은 다시 은행 예금에 가입하더라도 20~30% 정도는 따로 떼서 ELD나 ELS 등과 같은 고수익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특히 ELD는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도 가능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의 고객들에게도 괜찮은 상품으로 인식돼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올 때까지 일단 단기 상품에 넣어놓고 기다려보자는 부자들도 적지 않다. 정성진 국민은행 청담PB센터 팀장은 "만기를 1년으로 해놓으면 내년까지 자금이 묶이게 돼 좋은 투자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며 "이 때문에 머니마켓펀드(MMF)나 만기가 3개월 정도인 단기성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들도 많다"고 밝혔다.


◆부동산 투자 관심 높아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박승안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PB팀장은 "강남 부자들은 일단 부동산에 묻어두면 절대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심리가 강하다"며 "특히 내년 인플레이션으로 부동산 값이 뛸 거라는 예상이 많아 지금을 투자 적기로 판단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갤러리아팰리스 지점장도 "서울 반포,개포,잠실 등 주요 지역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거래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며 "18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사는 데 전세와 대출을 끼더라도 10억원이 넘는 돈을 일시에 투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