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비만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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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은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로부터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았다. 부자였지만 워낙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다 보니 나중엔 음식 구할 돈이 말라버렸다. 그러자 소중하게 키워온 딸을 팔아 식탐을 채웠다. 그러고서도 배고픔을 억제하지 못해 자신의 몸까지 뜯어먹었다. 죽어서야 끔찍한 저주에서 벗어난 셈이다.
에리직톤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비만에 이른 사람이 부지기수다. 1950년대만 해도 세계 과체중 인구는 1억명이 채 안됐으나 지금은 무려 10억명이란다. 이 가운데 3억명은 비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엔 과체중 인구가 15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놨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은데도 비만인구가 날로 증가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하버드대의 테리 번햄 교수와 남가주대의 제이 펠란 교수는 '비열한 유전자'라는 책에서 유전자와 사회 환경이 서로 맞지 않는 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개요는 이렇다. 음식 구하기가 어려웠던 10만여년 동안 인류는 먹을 게 생기면 포식을 해서 몸에 지방을 쌓아 놓고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긴 세월 이런 식으로 생존하다 보니 먹은 것을 되도록 덜 소모하는 유전자가 발달하게 됐다. 반면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지는 100여년밖에 안됐다. 유전자가 바뀌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아 여전히 많이 먹고 덜 소모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하나를 찾아냈다는 소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크생물학연구소의 송영섭 박사팀이 쥐 실험을 통해 지방을 소모하지 않고 체내에 쌓이게 만드는 유전자 'Crtc3'를 발견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Crtc3를 제거한 쥐와 일반 쥐에게 기름진 음식을 먹였다. 비만 유전자를 빼낸 쥐는 아무리 먹어도 30~35g의 체중을 유지한 반면 일반 쥐는 45~50g의 뚱보가 되고 말았다.
비만 유전자는 쥐뿐 아니라 사람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먹고 싶은 대로 먹고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일이 언제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유전자 연구는 초기 단계이고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비만 탈출의 유일한 방법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에리직톤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비만에 이른 사람이 부지기수다. 1950년대만 해도 세계 과체중 인구는 1억명이 채 안됐으나 지금은 무려 10억명이란다. 이 가운데 3억명은 비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엔 과체중 인구가 15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놨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은데도 비만인구가 날로 증가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국 하버드대의 테리 번햄 교수와 남가주대의 제이 펠란 교수는 '비열한 유전자'라는 책에서 유전자와 사회 환경이 서로 맞지 않는 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개요는 이렇다. 음식 구하기가 어려웠던 10만여년 동안 인류는 먹을 게 생기면 포식을 해서 몸에 지방을 쌓아 놓고 가급적 움직이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긴 세월 이런 식으로 생존하다 보니 먹은 것을 되도록 덜 소모하는 유전자가 발달하게 됐다. 반면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지는 100여년밖에 안됐다. 유전자가 바뀌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아 여전히 많이 먹고 덜 소모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하나를 찾아냈다는 소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크생물학연구소의 송영섭 박사팀이 쥐 실험을 통해 지방을 소모하지 않고 체내에 쌓이게 만드는 유전자 'Crtc3'를 발견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Crtc3를 제거한 쥐와 일반 쥐에게 기름진 음식을 먹였다. 비만 유전자를 빼낸 쥐는 아무리 먹어도 30~35g의 체중을 유지한 반면 일반 쥐는 45~50g의 뚱보가 되고 말았다.
비만 유전자는 쥐뿐 아니라 사람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먹고 싶은 대로 먹고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일이 언제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유전자 연구는 초기 단계이고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비만 탈출의 유일한 방법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