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생산업체인 K사는 지난해 초 호흡보조장비를 내놨다. 이 제품은 시장에 유통 중인 비슷한 제품에 비해 크기가 3분의 1에 불과한 데다 가격은 절반 수준이어서 국내외 병원 및 해외 딜러들의 주문이 폭주했다. 납기를 맞추는 데 정신이 팔려있던 어느날 K사에 세계 1위 업체인 유럽 Y사 명의의 공문 한 장이 날아왔다. K사 제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으며,제품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경고장이었다.

K사는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특허분쟁 컨설팅을 신청,신속한 초기 대응에 착수했다. 지식재산권보호협회 측은 Y사 제품이 오히려 K사의 국내 특허를 침해했다고 보고 역공을 펼 것을 제안했다. K사는 반대소송(counter claim) 가능성을 제기하며 Y사에 경고장을 보냈다. 결국 Y사는 꼬리를 내렸고,끊겼던 제품 주문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해외 기업과의 특허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수출국과 국내 중소기업 간 특허분쟁은 2004년 44건에서 지난달 말 현재 169건으로 증가했다. 통상 특허분쟁은 침해 기업이 피소 사실을 숨기거나 다양한 물밑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분쟁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게 특허청의 분석이다.

강경호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팀장은 "일단 특허분쟁에 휘말리면 소송 등으로 막대한 비용 부담을 져야 하는 데다 승패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자연 퇴출되거나 시장 진입 시기가 늦춰지는 등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특허분쟁이 발생하면 법정으로 가기 전에 기업 간 협상 등을 통한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허청은 수출 중소기업들의 특허분쟁 피해가 속출하자 100여개 특허사무소의 변리사로 구성된 분쟁대응전문가 풀(pool)을 구성,상황에 맞는 맞춤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컨설팅은 해외 경쟁사와의 분쟁 예상 특허를 사전에 분석하는 예방사업과 침해 경고 및 피소를 당한 기업의 적절한 대처 전략을 짜는 대응사업으로 분류된다.

의료기기 중소기업인 K사가 거대 글로벌 기업인 Y사 공격을 무력화시킨 것은 분쟁 대응 전문가의 협조 속에 침해 여부 판단을 시작으로 문제 특허 무효화,회피 설계 제안,대응 특허 발굴 등 신속한 대처에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엔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에 대해 납품 제품의 특허 보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터치패드 제조업체인 L사는 대기업의 특허 보증 요구에 일부 특허의 무효 가능성 등을 정교하게 제시,납품계약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허청 산하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는 특허분쟁과 관련,중소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소송보험료의 최대 80%(기업당 3000만원 이내)를 지원하고 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