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은 거치기간이 끝난 가계대출에 재차 거치기간을 주고 이자만 내게 하는 은행 관행에 제동을 걸 방침이라고 한다. 가계대출이 부실화하면서 금융불안을 야기하고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방침을 정한 것은 가계대출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부풀어 올랐다고 판단한 탓이다. 실제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43%에 이르러 일본(112%)은 물론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 수준(128%)도 크게 웃돈다. 가계부채가 언제라도 경제 불안을 부추길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가계부채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거치기간 연장 자제 요구와 함께 새로운 대출상품은 비거치식을 추천하고, 보통 3~5년인 거치기간도 줄이도록 권유키로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원리금을 무리없이 상환할 수 있는 가계가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까닭이다. 6대 시중은행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원금상환은 미룬 채 이자만 갚고 있는 비율이 무려 84%에 달한다. 거치기간 연장 중단 조치가 전격 시행된다면 이 중 상당 비율은 상환 불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 되면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 또한 크게 부풀어 오를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구나 내년에는 금리가 상승 추세를 유지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한층 우려가 크다. 부동산 담보 대출에 대한 원리금 상환 압박이 가중되면 보유주택을 매물로 내놓아야 하는 가계가 급증하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시장이 더욱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거치기간 연장 중단은 갑자기 전면 시행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시행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거치기간이 만료된 가계에는 다시 1~2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주면서 원금상환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아울러 장기저리상품 고정금리상품을 확대하는 등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위한 상품개발도 게을리해선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