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허홍만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닉 라일리 GM대우자동차 전 사장(현 GM유럽 사장)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불법 파견을 통해 사내하청 근로자들을 차별했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실태조사에서 "GM대우 원 · 하청 근로자의 작업내용이 구분되기 때문에 적법한 도급"이라고 정리했었다.

사내하청 문제를 놓고 사법부가 잇따라 행정부와 다른 결론을 내놓거나 종전과 정반대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 갈등이 심화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산업현장에서 나온다.

◆"행정부 조사 결과도 인정 못해"

GM대우에 대한 창원지법의 판결은 행정부의 실태조사 결과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용부는 사내하청 문제가 부각되자 '대기업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형태 운영 여부에 대한 실태점검'을 긴급 실시했다. 현장조사 결과에 따라 GM대우에 대해 "정규직 및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혼재 작업을 하지 않고 있어 적법하다"고 발표했다.

창원지법은 고용부 조사 결과와 달리 "GM대우가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 협력업체들의 기술이나 자본이 투입되지 않았고,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담당 업무가 동일 작업을 반복했다"며 불법 파견 혐의를 인정했다.

작년 2월 1심 판결과도 상반되는 결과다. 1심에서는 "GM대우와 협력업체 간 일부 종속성이 있기는 하지만 불법 파견이 아닌 적법한 도급계약 관계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GM대우는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협력업체 6곳으로부터 843명의 근로자를 파견받아 생산공정에서 일하도록 한 혐의로 2006년 12월 벌금 70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대법원,엇갈린 판결 논란

대법원 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지난 7월2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모씨가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내하청 근로자는 현대차와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환송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6년 같은 원고와 같은 쟁점에 대해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최씨 등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간부 18명은 2005년 "현대차와의 파견근로 관계를 인정해 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당시 대법원은 기각했다.

대법원은 "현대차가 최씨에게 직접 지휘 · 명령한 적이 없고,최씨와의 사이에 파견근로 관계가 성립한 사실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대법원이 동일 사안에 대한 판결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전원합의체'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조직법에는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 · 법률 · 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경우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된 합의체에서 심판한다'고 돼 있다.

◆산업계 "현장 감안한 판결 아쉬워"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이란 판단을 내린 후 산업계에선 노사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국내 37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중 상당수가 즉각적인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는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이달 초까지 25일간 울산 1공장을 점거했다. 매출 손실액만 3147억원에 달했다. GM대우 사내하청 근로자 중 일부는 부평공장 정문 위에 올라가 20일 넘게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현장의 실상을 고려한 신중한 판결이 아쉽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