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 연장을 제한하고 원리금을 동시에 갚는 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키로 한 것은 가계대출 부실화가 내년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보통 3년이나 5년 안팎의 거치기간을 두고 20~30년에 걸쳐 나눠 갚는 방식으로 주택대출을 취급해 왔다. 대출자의 거치기간이 만료되면 거치기간을 연장해 주는 방식으로 원금상환을 유예해 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주택담보대출의 84%가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납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까지 주택대출은 모두 273조2000억원에 달하며 이 중 거치기간 연장 또는 만기 일시상환 대출이 229조48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거치기간에는 이자를 아무리 갚더라도 원금 자체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대출자들로선 이자만 갚다가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원금을 한꺼번에 상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집값 상승 추세가 꺾이면 대출자의 부담이 커져 부실화될 위험이 커지는 대출로 꼽히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은 대부분 거치기간을 3년,5년 하는 식으로 상당히 장기로 운용하고 있다"며 "일종의 폭탄돌리기와 같은 주택대출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는 거치기간 자체를 가급적 줄이고 연장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우선 앞으로 거치기간이 만료되는 가계 대출에 대해서는 거치기간 연장을 자제하도록 은행들을 지도하기로 했다. 또 은행들이 새로 대출 상품을 판매할 경우 가급적 거치기간을 없애고 곧바로 원리금을 상환하게 설계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집값 상승을 노린 주택대출 급증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게 금감원의 방침이다.

은행들은 이 같은 대책이 주택대출 연체를 급증시킬 부작용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치기간이 끝난 대출자가 원금상환을 하지 못할 때 추가로 거치기간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관행이 중단되면 오히려 가계대출 연체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지도가 큰 효과가 없으리란 주장도 제기됐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도 거치기간 연장을 원하는 대출자들은 다른 금융회사로 갈아타도록 주선하고 있다"며 "거치기간 축소나 연장 자제가 큰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금감원의 행정지도까지는 앞으로 2~3개월 정도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대응방안과 상품개발 등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 대출의 상환 방식을 바꾸기보다는 신규 대출자에 한해 비거치식 대출을 늘리는 방안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