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청목회 입법로비 사태 이후 기업과 단체의 정치후원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치자금법을 손질하려던 움직임에 급제동이 걸렸다. 헌법재판소가 28일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법인 · 단체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 현행 정치자금법 조항이 헌법상의 정치활동 자유를 침해한다고 낸 헌법소원심판에서 합헌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 전 위원장은 2004년 총선 당시 언론노조를 통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3200만원의 선거자금을 기부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야의 '정자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재가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벌써부터 정치권 내에서 "당분간 정자법 개정 얘기를 꺼내기는 어렵게 됐다"며 한숨이 터져나오고 있다.

당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난 5일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후원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치자금법을 손질하는 데 최종 합의했다. 현행 정자법은 기업과 단체의 후원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개인만 연간 최대 500만원까지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청목회의 10만원짜리 쪼개기 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여야가 한목소리로 정치자금법을 손질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치자금법이 지난 11월30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후 여야는 불과 일주일 만에 합의에까지 이르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여야가 법인은 국회의원 한 사람당 100만원,연간 2000만원까지,단체는 500만원까지 정치자금 후원을 허용키로 한 것이다.

당초 개정안에는 회계처리를 위반할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 '전속고발권'을 주는 내용까지 포함됐으나 검찰의 청목회 수사를 무력화시키려는 기도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여야 합의과정에서 삭제됐다. 특히 청목회 사태 직후 법개정 움직임에 대해 투명성을 전제로 법인과 단체의 정치후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의 일부 시민단체마저 '입법권 남용'이라고 지적하자 여야는 법 개정 시기를 내년으로 일단 미뤄둔 상태였다.

하지만 헌재의 합헌결정으로 개정안 논의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잠복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제 상임위 차원에서 정자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것은 끝났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속내다. 백 의원은 "합헌 결정이 법 개정과 직접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과 분위기를 감안할 때 다시 논의를 이끌어내기는 어렵게 됐다"며 "정치개혁특위와 같은 보다 큰 틀에서 협의하는 방법이 있는데 내년 정치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