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8일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인터넷 등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됐다. 새로운 처벌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는 인터넷 등을 통해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허위글을 유포하더라도 처벌받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헌재의 결정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침해' 대 '허위사실의 빠른 유포 방지'라는 논란을 정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있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졌다는 허위 문자를 발송해 혼란을 일으킨 것처럼 허위사실이 급속도로 확산될 경우 이를 막을 실효성 있는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헌재 "현행법은 표현의 자유 보장 못해"

헌재 재판부의 이번 결정은 전기통신기본법의 해당 조항이 명확하지 않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어떤 행동이 법률상 '공익'을 해치는 것인지 아닌지는 객관적으로 정하기 어렵다"며 "다원적인 사회구조에서 공익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명확성 원칙을 위배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명백한 허위사실이라 해도 언제나 다른 사람의 명예 · 권리 및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침해하고 국가질서를 교란시키는 건 아니며,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훼손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사문화돼 있었던 해당 조항이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적용되면서 법률이 확대 해석 · 적용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동흡,목영준 재판관은 "법률상 '공익을 해할 목적'의 의미가 불명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전기통신설비에서 허위사실 유포는 파급력이 강해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고,공익을 훼손하는 행위에 한한 처벌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미네르바'박대성씨는 2008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외환보유액 고갈로 환전 업무가 중단됐다''정부가 주요 금융기관 ·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 등의 내용을 게시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해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다른 청구인 김모씨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에 참가한 여성을 경찰이 성폭행했다는 허위사실 및 합성사진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됐다.

◆검찰 "허위사실 유포 처벌에 공백 생겨"

헌재 결정에 대해 법무부는 "천안함 폭침 · 연평도 도발 당시 인터넷상 유언비어 유포로 사회적 혼란이 생긴 상황에서 처벌규정의 공백이 발생했다"며 "위험성이 큰 허위사실 유포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올해 천안함 사태 및 연평도 도발과 관련해 강제징집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들을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위헌 결정에 따라 이 조항을 근거로 기소돼 재판 중인 사건은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거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야 되고,종전에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도 재심이 허용된다.

하지만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효력을 잃더라도 형법상 명예훼손이나 국가보안법 등에 저촉되는 경우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 된다. 형법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을 받는다.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 등을 찬양 · 고무 · 선전하거나 동조한 자를 7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는 적용되지 않는다.

헌재 결정에 대해 포털업계는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됐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60년대 무선전신이나 전화와 관련해 도입한 조항을 2000년대 이후 사이버 공간에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고운/조귀동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