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한ㆍ미 FTA 첫날부터 방해…美에 "한국사람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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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前통상교섭본부장 'FTA를 말하다' 회고록
2006년 2월2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출범 선언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일본 대사관 직원이 미국 행정부 고위급 간부를 찾아 "한국과 FTA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2007년 4월에 있었던 한 · 미 FTA 협상 타결의 주역인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 · 사진)이 최근 펴낸 회고록 '김현종 한 · 미 FTA를 말하다'에서 소개한 비화다. 김 전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FTA 협상을 이끌며 FTA 낙제생 한국을 FTA 허브로 변화시켰다.
499쪽 분량의 회고록에서 김 전 본부장은 "나중에 한 · 미 FTA 협상이 타결된 후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은 한 · 미 FTA를 적극 지지한다고 발표했다"며 일본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최근 한 · 미 FTA 재협상 결과에 대해선 "추가 협상은 없다는 약속을 미국이 지키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큰 틀에서 볼 때 한 · 미 FTA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므로 비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FTA에 얽힌 뒷얘기도 털어놨다. 미국은 처음에 한국을 FTA 상대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김 전 본부장이 쓴 카드는 캐나다였다. 곡물 쇠고기 등 수출 품목이 미국과 겹치는 캐나다와 FTA를 하면 미국도 조바심을 낼 것이란 판단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한 · 캐나다 FTA 얘기가 나오면서 2004년 11월 미국은 한국에 FTA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FTA 체결 순서를 두고 '미국이 먼저냐,EU가 먼저냐'를 고민한 대목도 나온다. 처음엔 EU였다. 2003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부집행위원장에게 한 · EU FTA 가능성을 타진했다. 되돌아온 답변은 "당신네 나라는 FTA를 한 건도 안 했고 FTA의 'F'자도 모르는 나라 아닙니까".김 전 본부장은 '누가 누구에게 먼저 FTA를 요구할지 두고 보자'는 오기를 품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6년 10월.한 · 미 FTA에 위협을 느낀 EU가 "FTA를 하자"며 허리를 굽히고 들어왔다. 김 전 본부장은 "못 합니다. 저는 지금 약혼녀(미국)가 있습니다"며 배짱을 부렸고 EU는 "사전 예비협의라도 하자"고 매달렸다.
2003년 12월 일본과의 FTA 협상 때는 FTA라는 단어를 놓고 '기싸움'을 벌였다. 당시 일본은 FTA 대신 EPA(경제파트너협정)란 단어를 쓰자고 했고 김 본부장은 거부했다. "파트너란 말은 '선임 파트너' '후임 파트너' 식으로 쓰이는데 일본이 EPA라는 명칭을 통해 동북아에서 한국을 일본의 후임 파트너로 취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략적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의 FTA 우선 상대는 미국이나 EU이고,일본은 나중이란 게 김 전 본부장의 입장이었다.
남북 FTA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제안한 일화도 소개했다. 남북 FTA가 통일로 가는 여러 길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2007년 4월에 있었던 한 · 미 FTA 협상 타결의 주역인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 · 사진)이 최근 펴낸 회고록 '김현종 한 · 미 FTA를 말하다'에서 소개한 비화다. 김 전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FTA 협상을 이끌며 FTA 낙제생 한국을 FTA 허브로 변화시켰다.
499쪽 분량의 회고록에서 김 전 본부장은 "나중에 한 · 미 FTA 협상이 타결된 후 워싱턴 주재 일본 대사관은 한 · 미 FTA를 적극 지지한다고 발표했다"며 일본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최근 한 · 미 FTA 재협상 결과에 대해선 "추가 협상은 없다는 약속을 미국이 지키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큰 틀에서 볼 때 한 · 미 FTA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므로 비준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FTA에 얽힌 뒷얘기도 털어놨다. 미국은 처음에 한국을 FTA 상대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김 전 본부장이 쓴 카드는 캐나다였다. 곡물 쇠고기 등 수출 품목이 미국과 겹치는 캐나다와 FTA를 하면 미국도 조바심을 낼 것이란 판단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한 · 캐나다 FTA 얘기가 나오면서 2004년 11월 미국은 한국에 FTA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FTA 체결 순서를 두고 '미국이 먼저냐,EU가 먼저냐'를 고민한 대목도 나온다. 처음엔 EU였다. 2003년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부집행위원장에게 한 · EU FTA 가능성을 타진했다. 되돌아온 답변은 "당신네 나라는 FTA를 한 건도 안 했고 FTA의 'F'자도 모르는 나라 아닙니까".김 전 본부장은 '누가 누구에게 먼저 FTA를 요구할지 두고 보자'는 오기를 품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6년 10월.한 · 미 FTA에 위협을 느낀 EU가 "FTA를 하자"며 허리를 굽히고 들어왔다. 김 전 본부장은 "못 합니다. 저는 지금 약혼녀(미국)가 있습니다"며 배짱을 부렸고 EU는 "사전 예비협의라도 하자"고 매달렸다.
2003년 12월 일본과의 FTA 협상 때는 FTA라는 단어를 놓고 '기싸움'을 벌였다. 당시 일본은 FTA 대신 EPA(경제파트너협정)란 단어를 쓰자고 했고 김 본부장은 거부했다. "파트너란 말은 '선임 파트너' '후임 파트너' 식으로 쓰이는데 일본이 EPA라는 명칭을 통해 동북아에서 한국을 일본의 후임 파트너로 취급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략적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의 FTA 우선 상대는 미국이나 EU이고,일본은 나중이란 게 김 전 본부장의 입장이었다.
남북 FTA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제안한 일화도 소개했다. 남북 FTA가 통일로 가는 여러 길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