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보장왕의 충신 선도혜에게 뇌물을 바치고 살려주길 부탁했다. 이때 선도혜가 넌지시 말한 것이 토끼가 거북이를 타고 용궁에 갔다가 빠져나오는 이야기다. 이 같은 《별주부전》은 《삼국사기》에도 전하는 민족 설화로,토끼의 지혜로움과 슬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열두 띠동물 가운데 넷째인 토끼는 꾀보의 상징이다. 옛이야기나 동요 민화 동시 등에서 토끼는 작고 귀여운 생김새와 놀란 듯한 표정 때문에 약하고 작은 몸집과 달리 매우 영특한 동물로 묘사돼 왔다. 체구가 크고 힘은 세지만 우둔한 동물들에게 저항하거나 그들의 힘을 역이용해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그렸고,토끼처럼 평화롭게 풍요로운 세계에서 근심 걱정 없이 오래도록 살고 싶어했다. 토끼는 장수의 상징이자 달의 정령이다. 토끼는 어쩌다 달에 가게 됐을까.

불교 설화에서 토끼는 부처의 전생으로 제석환인을 위해 스스로를 소신공양한 자기희생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누가 참으로 보살도를 닦고 있는지 시험하고자 제석환인이 노인으로 변신해 여우 원숭이 토끼에게 먹을 것을 청했다. 여우는 생선,원숭이는 과일을 가져왔으나 빈손으로 돌아온 토끼는 불 속에 제 몸을 던져 공양했다. 토끼의 소신(燒身)공양에 감동한 제석환인은 토끼의 모습을 달에 그려넣어 후세에 본이 되게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이야기는 달 속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는 토끼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간지로 볼 때 토끼는 방향은 정동(正東),시간은 오전 5~7시를 가리키는 방위신(方位神)이자 시간신(時間神)이다. 그래서 토끼의 간은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됐다. 묘방(卯方)인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로부터 양(陽)의 기운을 받아먹고 음(陰)의 세계인 달에서 장생약인 음약(陰藥)을 받아먹었으며,음양의 기운이 열두 경맥의 하나인 간경(肝經)에 녹아들어 불로장생의 영약(靈藥)이 됐다는 것이다.

민화에서 토끼는 두 마리를 한 쌍으로 그려 다정하고 화목한 관계를 나타낸다. 그 배경은 역시 계수나무와 달이다. 계수나무 대신 소나무나 대나무를 그리기도 하지만 달과 방아질하는 토끼의 모습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토끼는 언제나 자신이 만든 행로로만 다니다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또 다른 동물로부터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명석한 머리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치밀하게 계산한다. 그래서 토끼띠는 외길 인생,치밀하고 명석한 두뇌를 요하는 학자나 교직자가 많다고 한다.

토끼는 자신의 눈과 같은 색깔의 궁둥이를 가진 원숭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나 토끼가 원숭이와 같이 사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토끼띠와 잔나비띠는 궁합이 맞지 않아 서로 피하는 반면 토끼띠와 돼지띠,양띠는 삼합(三合)이라고 부를 만큼 궁합이 잘 맞는다는 속설이 있다. 토끼는 돼지의 분비물 냄새와 힘을 부러워하고,양의 초연함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신묘년 토끼해,토끼처럼 영특한 꾀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진하면 어떨까.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