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라는 뜻으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무너질 염려가 있거나,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기초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로 새로운 일을 도모하거나 중요한 공부를 할 때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지금까지 부족함은 없는지,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만큼 기초를 탄탄히 다졌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기 위해서다. 기초를 잘 쌓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 조급함을 버리고,끈기와 열정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기초의 중요성은 과학기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춧돌을 잘 세우고 기초 공사를 꼼꼼히 해야 높고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듯이,기초 · 원천기술이라는 토대가 탄탄해야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능하다.

지난해 온 국민을 기쁘게 한 아랍에미리트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만 하더라도 원전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원자력발전소는 한 나라의 과학기술이 총체적으로 집약되는 결정판이라고 한다. 핵공학 물리학 지질학 금속학 재료공학 등 수많은 분야의 기초 · 원천연구가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구가 어렵고 진전도 더디다. 연구자들의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연구비도 막대한 규모로 투입돼야 한다.

정부는 1990년에 '세계 7대 기술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선도기술 개발사업(G7프로젝트)을 추진하고자,한국형 원자로를 핵심 선도 기술 분야로 선정했다. 이를 계기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기초 · 원천 연구가 보다 집중적으로 진행됐고,이는 한국형 원전 수출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이같이 첨단 대형 프로젝트는 기초 · 원천 연구의 중요성과 특성을 얼마나 일찍부터 깨닫고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 대규모 장기 국책연구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4개 사업단이 종료되는 21세기프론티어사업도 기초 · 원천 연구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량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가령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에서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핵심 기반기술을 비롯한 세계 최초,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한 경우가 그런 것이다.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역시 전통적인 재활용산업을 자원순환산업으로 전환,신산업 창출과 국내 자원순환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정 수준의 연구 결과물을 내놓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응용,사업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형 · 장기 국책연구사업이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되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조급한 생각은 금물이다. 믿음을 갖고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연구 ·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올해도 우리 과학기술계의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노승정 <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 단국대 응용물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