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말 장 · 차관 토론회를 열고 올해 6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5% 성장과 3% 물가 달성 △포퓰리즘 방지와 공정사회 구현 △청년실업과 고령화 대비 △일과 여가 조화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교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와 투기자본 규제 등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지식경제부 금융위원회 등 주요 경제부처 수장들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정책 과제들에 상충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성장은 높게,물가는 낮게

국내 경제의 지난해 성장률은 6.1%로 추정된다. 전년 0.2% 성장에 그친 기저효과 덕분에 큰 폭의 성장이 가능했다.

정부는 역(逆)기저효과가 예상되는 올해도 5% 내외의 높은 성장 목표를 제시했다. 민간 및 국책 연구소들이 대부분 4% 초중반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낙관적이다.

정부가 5% 내외의 성장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물가를 3%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것은 모순된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성장을 하게 되면 기업과 개인의 소득과 소비가 자연스럽게 증가해 물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자 남성복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과 비슷한 일들이 경제 각 부문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5% 성장과 함께 3% 이내 물가를 달성하려면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공공요금이나 대학등록금,농수산물 등의 가격 상승을 공권력으로 억누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상당수 연구기관들은 내년 4%대의 경제 성장에 3.5%가량의 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정부의 '5% 성장,3% 물가'는 정책 의지를 담은 경제운용 목표치"라며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전망 자체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 정책 상당수가 포퓰리즘

공정 정책을 강화하면서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을 막겠다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공정 정책의 상당수가 포퓰리즘 성격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기 국회의 최대 이슈였던 소득 · 법인세 감세 철회 논란이 대표적이다. 올해 논의해도 충분한 이 문제를 '부자감세'라는 정치 이슈로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부각시켰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시급했던 가축전염병예방법 등 정작 중요한 법안들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한국의 최고 소득세율 35%는 내년에 예정대로 33%로 낮아지더라도 경제발전 수준이 비슷한 홍콩(17%)과 싱가포르(20%)보다 훨씬 높다.

지난달 정기 국회에서는 변호사 등 고소득자에 대한 세무검증제나 미술품 양도세 부과 등 이익집단들이 반대 로비한 법안들이 줄줄이 무산되거나 연기됐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올해는 무상급식 등 논란을 가져올 수 있는 포퓰리즘성 복지 정책들이 더 많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경제학에서 공정 사회는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인데 최근 나오는 정책들은 성격이 조금 다른 것 같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력 약화

청년실업과 고령화 대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다.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는 내수 성장이 이뤄져야 하고,이를 위해서는 서비스산업의 선진화가 시급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그러나 서비스산업 선진화의 핵심인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조차 힘든 상황이다. 지난 몇 년간 끌어온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의 이견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재정부는 올해 중점 추진 과제에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건강보험 가입자가 어느 병원에서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 등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여전한데 선거를 앞둔 올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논의가 먹힐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이 최근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약국 등 이익집단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권을 프랑스에 넘겨준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전년도 G20 정상회의 주최국으로 공동의장국 지위를 갖고 있긴 하지만 현안에 적극 개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FTA를 적극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으나 이미 정부 간 협상을 타결한 미국 · 유럽연합(EU)과의 FTA 발효가 시급한 상황이다. 선물환포지션 한도 축소,외국인 채권투자 과세,거시건전성 부담금 등 이미 도입한 3대 방안 외에 추가적인 투기자본 규제 역시 마땅치 않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