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로 변한 공장을 보고 처음엔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회사 앞에 서면 불꽃이 치솟던 화재 당시 모습이 떠올라 깜짝 놀라곤 합니다. 올해는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비상하는 한 해가 될 겁니다. "

영하 10도 안팎의 매서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새해 첫 일요일인 2일 인천 남동공단.직원들이 쉬는 날 혼자 회사에 나와 생산현장을 둘러본 조익길 아우레이트 대표(52 · 사진)의 얼굴엔 꿈과 희망이 넘쳐났다.

조 대표는 "이달 중 직원 5명을 더 뽑고 수출선 다변화를 위해 해외 전시회 출품도 늘리겠다"며 "올해는 토끼처럼 뛰어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롯데삼강 출신의 조 대표가 창업한 때는 2001년 4월.올해로 창업 10주년을 맞는 이 회사는 자갈,새알,과일 모양의 초콜릿류를 전문 생산하고 있다. 상온 보관이 어려운 일반 초콜릿의 단점을 특수코팅 기술로 보완해 영상 30도 이상에서도 안정적으로 보관유통이 가능한 게 이 회사 초콜릿의 경쟁력이다.

조 대표는 해외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명함과 카탈로그를 뿌렸다. 공장을 찾아오는 해외 바이어에게 생산라인을 보여주고 직접 먹어보도록 했다.

그는 "품질에 자신이 있어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공략했다"며 "'아우레이트'는 일본 스페인 미국 리비아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등 20여개국에서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아우레이트'로 수출한 과일모양의 초콜릿이 2004년 유럽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회사는 매년 15~30%씩 성장했다. 2007년에는 인천 남동공단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하고 임대공장 생활에서 벗어났다.

잘 나가던 조 대표의 꿈은 이듬해 9월8일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새벽 이웃공장에서 난 화재의 불똥이 옮겨붙어 4시간 만에 공장이 잿더미로 변한 것.그는 "제품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소방대원이 붙잡아 고함만 쳤다"며 "원재료를 포함해 4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사실 당시 매출액보다도 많은 손실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부터 중고기계를 물색하러 다녔다. 돈이 없어 외상주문을 요청해야 했다. 딱한 사정을 들은 한 기계 업체 사장은 추석연휴도 반납하고 외상으로 설비를 제작해줬다. 협력업체들도 6개월짜리 어음을 받아가고 미수금은 기한 없이 연장해줬다.

독일과 대만의 거래처는 선급금 4만5000달러를 보내 복구를 도왔다. 단 한 명의 직원들도 회사를 떠나지 않고 복구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 덕분에 3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과 달리 3주 만에 공장을 일부나마 가동할 수 있었다.

조 대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경영안정자금 지원도 재기에 큰 도움이 됐다"며 "전 직원이 휴일도 없이 생산라인을 돌려 주문 물량을 조금씩이나마 수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은행대출과 정책자금 등을 포함해 26억원어치를 라인정상화에 투입한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2교대(오전 9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할 정도로 일손이 바빠졌다. 2009년 4~5시간,지난해 상반기 8~9시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일손이 바빠졌다.

조 대표는 "지난 연말 급여를 인상하고 특별 성과급도 제공했다"며 "올해는 수출 국가를 늘려 지난해보다 50% 이상 성장한 6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남동공단=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