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은 털어 버렸다. 사실 작년 12월 한 달은 가슴앓이가 심했다. 연말 인사에서 '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다. 올해도 '과장'딱지를 떼지 못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새해다. 며칠 전 태양과 오늘 태양이 다를 리 없건만,김 과장은 잊어 버리기로 했다. '조진조퇴(早進早退) · 지진지퇴(遲進遲退)'라고 하지 않았던가. 올해도 열심히 일하기로 했다. 한참 크는 아이들 뒷바라지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술은 적당히 하되 운동은 열심히 하기로 했다.

옆자리 이 대리 책상을 힐끗 보니 '금(禁)'자가 즐비하다. 금연 · 금주 · 금식 · 금욕 등.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다짐이 가상하다. 그래 다시 해보는 거다. 작년에 그랬듯이,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칠지 모르지만 말이다.


◆빨간 날은 가족과 함께

빨간색 많은 2011년 달력은 김 과장,이 대리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올해 공휴일은 주 5일제 근무를 기준으로 116일.지난해 112일보다 4일이 많다. 특히 토 · 일요일과 이어지는 황금 공휴일이 많다. 현충일과 광복절,개천절이 모두 월요일이다. 설날과 추석 연휴도 각각 5일,4일로 어느 해보다 넉넉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민재 과장(38)은 올해 빨간날 대부분을 가족과 보내기로 했다. 국내외 여행 장소까지 모두 정해 놓은 상태다. 김 과장이 이 같은 결심을 한 것은 지난달 망년회 시즌 세살배기 아들이 술 취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고 나서다. 야근이다,회식이다 핑계를 대며 가족에게 소홀히 하다 보니 점점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는 건 당연한 일.여전히 자신을 서먹하게 대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됐을까"하고 자괴감에 빠진다. 김 과장은 "올해 휴일은 가족과 보내며 그동안 잃었던 점수를 다시 따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돈보다 사람이 최고

중견 화장품 회사 자재과에 다니는 김태연 과장(41).그는 올해 화두를 '관계'로 정했다. 술을 한 방울도 하지 못하는 그가 올해 독하게 술을 배우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들은 끊지 못해서 난리인 '공공의 적'을 스스로 맞아 들이겠다니,'가혹한 변신'을 스스로 주문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결정적으로 생각이 달라진 건 건강했던 아버지가 등산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100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급하게 휴대폰 문자로 부친상을 알렸지만,주말 이틀 동안 빈소를 찾은 사람은 1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독신인 데다,부모님이 모두 60대여서 급할 게 없다고 생각해 애경사를 잘 챙기지 않았다"며 "직접 당해보니까 현실이 너무 냉정하더라"고 털어놨다.

[金과장 & 李대리] 빨간날 116일…ㅋㅋㅋ 달력만 봐도 흐뭇해

◆'한자'를 정복하라

3년차 직장인 안효민씨(28 · 여)는 새해 첫주부터 구몬학습지를 시작할 예정이다. 20대 후반이 된 그녀가 새삼스럽게 학습지를 시작키로 한 건 한자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학창시절에도 '양'이나 '가'를 맞을 정도로 한자를 싫어했던 안씨지만,사회생활을 하면서 새삼 한자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영업직인 그녀는 명함을 주고 받을 일이 많다. 연배가 지긋한 고객으로부터 명함을 받았는데 앞면에 덜렁 한자 이름만 적혀 있는 게 아닌가. 기지를 발휘해서 명함 뒤편의 영문자를 얼른 봐서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게 짜증스럽기 그지 없었다. 상사가 던져준 자료에 써 있는 한자의 의미를 몰라 당황했던 것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새해엔 '한자 뽀개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안씨는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동료가 학습지로 일본어를 배웠다는 얘기를 듣고 한자를 그런 식으로 공부하기로 했다"며 "학습지 회사에 물어보니 성인 신청자도 은근히 많다는 얘기를 듣고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영어 공포증은 이제 그만

국내 한 제약업계 홍보실에 근무하는 구모 과장(34)은 작년을 생각하면 속이 쓰린다. 그의 지난해 새해 결심은 '이직'이었다. 대학 동기가 근무하는 헤드헌터 회사에 은밀하게 이력서도 제출해 뒀다. 홍보업무 경력 5년이니 커리어도 나름 괜찮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작년 6월께부터 오매불망 기다리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외국계 제약사에서 홍보 실무자를 뽑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직 후 맡을 업무,급여 수준,복리후생 모든 것이 구 과장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데서 막혔다. 바로 외국어 실력이었다. 군대를 카투사로 다녀온 터라 영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던 구 과장이었건만 영어로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번번이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구 과장은 지난해 외국계 제약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세 차례나 놓쳐 버렸다. 구 과장이 새해 첫 출근날 새벽에 달려간 곳은 회사 근처 영어회화 학원이었다.

◆엥겔계수를 낮춰라

광고회사 김모 대리(32 · 여)의 올해 목표는 '엥겔계수 낮추기'다. 골드미스이자 미식가인 김 대리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삶의 낙이다. 한 달 월급의 50% 이상을 순수하게 먹는 데만 지출한다. 간간이 백화점에서 옷이나 가방이라도 사면 월급의 70%가 훌쩍 날아가 버린다. 28살에 결혼한 동기 임모 대리(32 · 여)는 항상 그에게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놔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김 대리가 지난해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결혼 때 부모님께 전부 다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향후 남편될 사람에게 '통장에 잔고 없는 속 없는 여자'로 비쳐지는 것도 싫어서다. 김 대리는 "올핸 정말 먹던 거 덜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려고 한다"고 말했다.

◆결혼 그까짓 거 하고 만다

레저업체에 근무하는 1978년생 동갑내기 여직원 김 대리와 박 대리의 새해 목표 1순위는 단연 결혼이다. 그 둘은 결혼에 골인하기 위한 '실천강령'으로 과거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걷기로 했다. 김 대리는 소개팅이나 선 등을 거의 나간 적이 없었고 연애도 3년 이상 쉬었다. 단지 결혼에 대한 관심과 동경만 있을 뿐이었다. 반면 박 대리는 소개팅과 선에 심하게 적극적이었고 연애도 쉬지는 않았으나 그 인연이 결혼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들은 대대적으로 전략을 수정키로 했다. 대학생활 내내 치마 1개로 버틴 김 대리는 최근 치마와 하이힐을 구입했다. 주위에 '소개팅 세일즈'도 시작했다. 박 대리는 한동안 '휴식기'를 갖고 황폐해진 정신 건강을 달래기로 했다. 박 대리는 "한동안 템플 스테이도 고려할 정도였다"며 "소개팅과 선을 너무 많이 나가니 직업,학력,집안은 물론 와이셔츠는 깔끔하게 다렸는지까지 따지며 눈만 높아져 한동안 쉴 예정"이라고 털어놨다.

이정호/이관우/김동윤/이고운/강유현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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