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3일 신년 연설에서 밝힌 대북정책 구상에는 채찍과 당근 메시지가 동시에 담겼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도발엔 강력하게 대처하되 북한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면 획기적인 경제협력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대한 기준은 제시하지 않아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에 공 다시 넘어가

이 대통령은 우선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이 있을 뿐"이라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 북한에 핵과 군사적 모험주의를 포기할 것도 요구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평화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며 북한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한 담화에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북한 스스로의 변화를 포기하는 듯한 언급을 한 것과 사뭇 다르다. 그렇지만 신년 연설에선 '기회의 창'을 다시 한번 열었다. '진정성'이라는 전제를 달았으나 경협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 있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핵 폐기에 대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면 '한국판 마셜 플랜'과 같은 대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뜻이다. 일방적 제재 만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매단계 시간을 끌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협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대북 일괄 타결(그랜드 바겐) 방식을 관철시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북측이 지난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대화 의지를 강조한 데 대해 다시 공을 북측에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여지를 열어 두면서 향후 6자회담 국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압박을 가하되 대화의 문은 열겠다는 대북기조는 종전에 비해 다소 유연해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던지는 제안이 없어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나 진정성이 핵 폐기를 뜻하는지,폐기에 대한 의사만 나타내면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 혼선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있다.

◆"대화의 문 닫히지 않아"

이 대통령은 "평화의 길은 아직 막히지 않았고,대화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면서도 6자회담을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를 언급한 이후 회담 쪽으로 급속한 쏠림 현상을 보이는 데 대해 제동을 건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현 시점에서 6자회담에 방점을 찍을 경우 북한의 희망에 따라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그대로 용인해주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이 "관련국들의 공정하고 책임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한 대목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영식/이준혁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