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장관도 바뀐다고 알고 있었는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과천의 한 식당에서 출입기자들과 신년회를 겸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지난해 12월31일 단행된 개각 이야기가 나오자 윤 장관은 "재정부도 (장관이) 바뀌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라며 농담을 던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악으로 치닫던 2009년 2월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한 윤 장관은 당시 "온 몸에 피 터지면서 쫓겨나갈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장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역대 재무장관 중 김만제 전 재무부 장관(1983년 10월~1986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재임 2년을 채우는 장수 장관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지난해 6%대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주최한 덕분이다.

그는 "내가 올해로 만 65세이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봤다"며 인사말을 하는 대신 김춘수의 '꽃'과 이형기의 '낙화' 등 삶에 대한 관조적인 의미를 담은 시를 연거푸 읊었다. 경륜이 쌓인 장관답게 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에도 여유가 있었다. 김석동 신임 금융위원장에 관한 질문에는 "한 나라의 자본은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으로 나뉜다"며 "한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본이 필요한 곳에 잠재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진용이 짜여진 경제팀에 대해서는 "신년 초부터 전열을 정비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속도를 발휘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인선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에 대해서는 "시장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비주류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국가적 자산"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시장경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냐는 반론에 부딪칠 수 있다"며 균형된 입장을 취했다.

윤 장관은 지난해 10월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중국이 막판까지 반대해 코뮈니케(공동성명서) 도출에 진통을 겪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중국 장관에게 끝까지 반대하면 우리 모두 죽는다는 의미로 'You die,we die,all die'라고 말해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다"며 "다른 장관들은 내가 유머감각 있는 표현을 썼다고 했지만 사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복지정책은 원칙과 규율이 있어야 하고 무책임한 포퓰리즘적 주장은 결국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나라 곳간을 공유지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