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현대그룹이 제기한 양해각서(MOU) 효력유지 가처분신청을 4일 기각,현대건설 인수전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승리로 돌아가게 됐다. 현대그룹이 추가 소송 등을 통해 반발할 것으로 보이지만，채권단은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를 밟을 계획이어서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금융계 관측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5조5100억원)의 일부인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달라는 시장과 채권단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다 잡았던 '대어'를 놓치게 됐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대그룹은 1조200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현대건설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고 인출에 제한이 없음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합리적 범위의 자료제출을 요청받았으나 작성인의 권한이 의심스러운 세 장의 대출확인서만 냈을 뿐 충분히 응하지 않아 MOU 해지가 적법하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몇 차례 대형 인수 · 합병(M&A) 실패를 겪으면서 인수자금의 출처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시장의 요구가 커졌다"며 "이번 현대건설 매각을 계기로 대형 M&A 자금조달의 투명성 검증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협상 새 파트너는 현대차그룹

현대건설 채권단(주주협의회)은 5일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을 부의해 7일까지 각 채권은행 의견을 취합한다. 이 안건은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통과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안건이 통과되면 다음 주 중 현대차그룹과 MOU를 체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결권이 많은 채권단 운영위원회 소속의 외환은행(24.99%) 정책금융공사(22.48%) 우리은행(21.37%) 등은 높은 가격에 매각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이 입찰 심사 때 제시한 5조1000억원에서 가격 협상을 시작한다. 가격 조정은 이 가격의 3% 범위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채권단과 MOU를 맺으면 이후 4~5주에 걸쳐 현대건설 실사를 실시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2월 중순 주식매매계약(본계약)을 체결하고 3월 말이나 4월 초에 인수대금 지급 등 모든 매각 절차가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법원 결정을 환영하며 더는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소모적 분쟁이 계속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설 전에 인수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채권단-현대그룹 다툼은 계속될 듯

현대그룹은 법원의 기각 결정에 대해 "항고할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룹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뒤집기 위한 의도로 MOU를 체결한 채권단의 주장과 논리가 법원에 의해 여과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채권단이 현대차그룹과 매각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또 매각 작업이 일단락된 뒤에도 지루한 법정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그룹은 추가 소송 등 장기전에 나설 채비를 이미 마쳤다. 현대상선 유상증자 등을 통해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우호지분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현정은 회장의 의지도 강하다. 현 회장은 지난 3일 시무식에서 "많은 난관이 놓여 있으나，혼연일체가 돼 모든 역량을 결집한다면 현대건설은 반드시 우리 품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측은 그러나 현대그룹의 소송 제기가 매각 작업 자체를 중단시킬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본안 소송 등을 제기할 경우 매각 절차를 다소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만 현대차그룹에 현대건설을 매각하려는 방향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며 "채권단이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까지 법원이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데 그때쯤이면 이미 현대차그룹과의 매각 절차가 끝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낸 2755억원 규모의 이행보증금 반환을 놓고도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소송 등 소모적 논란을 중단하고 채권단에 합리적 요구를 제시하면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언/이태훈/박동휘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