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모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소설 속에 나오는 젊은 부부가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 휘발유 냄새가 나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두고 대화가 오가는 대목이었다.

"정말 기름 냄새가 나는데…."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거 소비자(보호)원 같은 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소설 속에서 젊은 부부는 우선 아이스크림 회사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하기로 하지만 의심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 우리가 무슨 이물질을 넣었다고 의심받으면 어쩔 거야?"

"전화나 해보지 뭐.만약 그런 식으로 나오면 소비자(보호)원으로 바로 신고해야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소비자학을 전공하고 소비자문제를 다루고 있는 기관의 장으로서 작품 속에 비친 소비자문제가 왠지 모를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소설 속에서 오가는 젊은 부부의 대화 속에는 소비자문제의 해결 과정이 모범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보면 소비자문제 해결의 과정을 4단계로 똑부러지게 가르치고 있다. '1단계:회사 소비자상담실에 연락한다''2단계:한국소비자원이나 소비자단체에 도움을 요청한다''3단계: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한다''4단계:법원에 소송을 한다'.

우리의 소비생활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물품과 서비스가 출현하고 초고속인터넷과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형태의 판매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악덕상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나 식품의 안전성 시비,제품 결함으로 인한 생명 · 신체상의 위해를 당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소비자문제를 겪는 연령층도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교육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소비자 피해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이용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경제적 시간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말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처럼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는 피해 보상과 같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권리 주장 이전에 선행돼야 할 것이 바로 소비자로서의 책임이다. 소비자 스스로 상품에 대해 올바르게 선택하고 올바르게 사용했을 때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보호도 받을 수 있다.

소비자는 제품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불량 제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피해 보상이나 리콜을 요구하는 '깐깐한 소비자',스스로 소비자 정보로 무장하고 자신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책임을 지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돼야 한다. 나아가 소비자는 자신의 선택이 시장 경쟁,기업 경쟁력,환경 보존,에너지 절약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면서 소비생활을 하는 '책임 있는 소비자'로서의 역할도 다 해야 할 것이다.

김영신 < 한국소비자원장 ys_kim@kc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