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서울 · 수도권 아파트 단지들이 요즘 난리다. 주민들은 사업중단 위기에 처했다면서 반발하고 있고 인근 중개업소들은 가격하락을 예상한다. 범수도권공동주택리모델링연합회,1기신도시리모델링연합회 등은 입장을 정리해 당국에 항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서울 ·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이 추진되는 아파트는 87개 단지 5만5000여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30개 단지 3만2600여가구는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에 있다. 대부분 1990년대 초반 입주한 중층단지여서 재건축이 사실상 어려운 곳들이다.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말 아파트 층수를 높여 가구 수를 늘리는 수직 증축을 허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단지 내 빈 공간에 수평 증축을 하는 건 가능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가구에 대한 일반분양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전용면적의 30% 이내에서 수평 증축을 하거나,지상 1층을 필로티(기둥만 세운 빈 공간)로 만드는 대신 한 개층을 수직 증축하는 선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증축을 통해 생기는 여분의 아파트를 일반분양해 사업비 부담을 줄이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국토부가 제시하는 증축 불가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구조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기존 아파트 건물 위로 층수를 높이면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40년이 지나야 대상이 되는 재건축에서도 가구 수가 거의 늘어나지 않는 단지가 있는 데 반해 15년 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가구 수를 늘려 주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도 이유로 든다. 리모델링은 말 그대로 기존 주택을 개 · 보수해서 사용하는 '수선 중심'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국으로선 이런저런 측면을 살피고 부작용이나 형평성까지 고려하다 보니 신중한 결론을 내렸을 게다. 주민이나 사업자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감안하다 보면 사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되는 난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구조 안전성만 해도 그렇다. 중층을 고층으로 증축한다면 모를까 한개 층만 더 올리는 건 구조보강공사 등을 통해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는 세계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를 지었을 정도로 뛰어난 시공능력도 갖고 있다. 물론 철저한 검증은 필수다.

구조안전상의 문제라면 1층을 필로티로 만드는 대신 한 개층을 수직증축 하는건 허용하면서 필로티 없는 증축을 막는 것도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한 개층을 증축하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재건축과의 형평성 역시 넓게 보면 큰 걸림돌은 아니다. 수직 증축이나 일반분양 가구 수의 규모를 엄격하게 제한해 차별화하면 될 게 아닌가.

리모델링은 현재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층 이상으로 지어진 전국 수백만가구의 아파트에도 머지않아 닥칠 일이다. 국토부가 리모델링 사업비를 국민주택기금에서 연리 3% 정도로 지원하고 취득 · 등록세 및 재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업이 매끄럽게 추진되는 단지가 많지 않은 건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탓도 있지만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이유도 있다고 봐야 한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들면 손대기가 더 어려워진다. 잔뜩 고여 있는 리모델링의 물꼬를 터줘야 할 때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