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재벌'로 불렸던 고(故)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회장의 집안은 국내 기업인 가문 가운데 자식들이 공부를 가장 잘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3남3녀의 6남매 중 4명이 서울대를 졸업했고,3명은 하버드대를 나왔다. 대학 입학이나 졸업 때 수석을 한 사람도 3명이나 된다. 막내 아들인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59)은 6남매 중 학위가 가장 많은 사람이다.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나온 김 회장은 미국 미시간대 법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MBA)에 이어 하버드대 신학 석사까지 미국 명문대 석사 학위를 3개나 갖고 있다. 그는 선친의 부름으로 경영을 맡기 전 목회자의 길을 준비했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감리교회인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그의 장인이다.

◆과학자를 꿈꾼 호기심 많은 소년

김 회장은 요즘도 한 달에 열 권 정도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그 습관은 물론 어릴 때부터 길러졌다. 초등학교 시절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로켓공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의 전기였다. 이후로 소년 김영훈의 꿈은 로켓을 만드는 과학자였다. "해와 달은 내 것"이라며 과학자의 꿈을 펴는 막내 아들을 선친은 무척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자의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에서 서울 5대 공립학교 중 하나인 혜화초등학교로 전학온 것이 발단이 됐다. 대구에서 한번도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던 그는 과외로 주입식 수학 선행학습에 숙달돼 있던 서울 친구들과의 큰 격차에 좌절했다. 수학에 대한 자신감 상실과 함께 거부감까지 생긴 그는 고교 시절 문과를 택해 법대에 진학했다.

그런 김 회장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은 20여년 뒤인 1984년 하버드대학원 때다. 그 은인은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인 제프리 삭스.하버드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전 국제경제학에 잠시 발을 들여놨던 그는 미적분이라는 난적을 다시 만나게 된다. 하버드대 학부과정에서 학부생들과 미적분을 배우면서 삭스의 강의를 좇아갔다. 연말 테스트에서 200점 만점에 195점을 맞아 클래스 1등을 했다. 2등과는 20점 이상 차이가 나는 점수였다. 국제경제학 공부를 이어가지는 않았지만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찾은 것만으로도 그에겐 엄청난 소득이었다. 수학에 대한 공포 탓에 과학자의 꿈을 일찍 접었지만 그가 요즘 가장 탐독하는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해설서다.

◆돈냄새 진동한 연탄사업

김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 선친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하버드대에서 신학 석사를 따고 미국 현지에서 전도사 활동을 하던 때다.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재계 경영자들을 위한 '특수 선교'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심했다.

1970년대 중 ·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연탄사업은 말 그대로 돈을 쓸어담을 정도로 활황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산림녹화를 위한 입산금지 정책이 시행되면서 연탄이 장작 수요까지 흡수해 급팽창한 덕분이었다. 은행 마감시간이 다 돼 바닥에 연탄재가 잔뜩 깔린 리어카에 돈자루를 싣고 은행에 가면 손사래를 치던 화이트칼라 행원들에게 통사정을 하며 입금해야 하던 시절이다. 선친이 회사에 "돈냄새가 진동한다"고 할 정도였다. 대성그룹에 현금이 많다고 소문난 것도 그때였다. 1970년대 중반 반도체 전문가였던 재미교포 교수가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며 사업 진출을 조언했지만 선친은 "모르는 분야는 하지 않겠다"며 반도체 대신 에너지 관련 분야인 도시가스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소로스의 유혹을 떨친 대성그룹

김 회장의 경영철학은 '공익과 기업이익 간의 합치'다. 그에게 위대한 경영 선배이기도 한 선친의 영향이다. 국내 상당수 기업이 부도 직전 위기에까지 몰렸던 위환위기 시절의 일이다. 외자 유치에 올인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세계적 헤지펀드 전문가인 조지 소로스가 방한했다. 김 대통령이 도와달라고 해서 한국에 왔다는 소로스는 파트너를 물색하던 중 대성그룹에 대한 평가를 접하게 된다. 당시 대성그룹은 롯데그룹,태광그룹과 함께 'IMF 무풍 3인방'으로 꼽힐 정도로 튼실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선친에게 주택은행과 서울증권의 공동 인수를 제안했다. 소로스가 당시 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던 위상과 함께 그의 제안은 기업 구도를 완전히 재편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선친은 소로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국가나 기업이 무너질 때 유리한 조건으로 주식을 사고,국가와 기업이 회복되는 시점에서 되파는 소로스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로스의 제안은) 많은 사람의 고통을 담보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과 환경을 중요시하는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선친의 말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소로스는 당시 사장이었던 김영훈 회장 가족을 뉴욕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최고의 예우와 함께 러브콜을 계속했지만 선친이 '물든다'며 반대해 결국 뉴욕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김 회장은 "소로스는 기업가로서 모험정신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대성그룹의 코드와는 맞지 않았다"며 "그때 소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재계 순위가 크게 바뀌었을 수 있겠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국궁(國弓) 경영론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 58세에 늦둥이 딸을 봐 1남3녀 4남매의 '아빠'가 됐다. 그는 요즘 막내딸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지만 평소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 중 하나는 국궁이다.

서울 사직동 인왕산 기슭의 국궁장인 황학정(黃鶴亭)을 자주 찾아 하루 100발가량 쏠 정도로 마니아다. 김 회장은 곧잘 경영을 국궁에 비유한다.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고,한 걸음 물러나 다시 점검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추진력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국궁경영론'의 요체다. 김 회장이 국궁을 접한 것은 40대 후반,갑자기 찾아온 오십견 때문이었다. 좀처럼 낫지 않아 고생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국궁을 접한 뒤 이제는 오십견을 훌쩍 떨쳐버렸다.

활쏘기는 발 디딤,몸가짐,살 먹이기,들어올리기,밀며 당기기,만작(滿酌 · 활을 최고로 당긴 상태),발시(發矢),잔신(殘身 · 화살은 몸을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면 안 된다) 등 8단계로 이뤄진다. 김 회장은 이 중 특히 만작 과정을 중시한다. 기업이 새 사업에 진출할 때 시장과 경쟁업체 동향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단계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가 현재 만작의 활시위를 겨냥하고 있는 곳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다. 대성그룹은 작년 5월부터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일대 330만㎡(100만평) 용지에서 GEEP(Green Eco Energy Park)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GEEP 프로젝트 시스템은 태양광 · 풍력 복합발전시스템,펌핑 시스템,기상측정 및 모니터링 시스템,태양광 지지대 및 모듈,모니터링 하우스 등 에너지와 IT가 총체적으로 집적화된 구조다. 여름철에는 펌핑시스템을,겨울철에는 난방시스템을 가동하게 된다.

"몽골 GEEP 프로젝트는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인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 모델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그룹의 핵심사업으로 키워 나가겠습니다. " 김 회장의 국궁 경영론이 어떻게 과녁을 적중할지 주목된다.

윤성민/이정호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