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전망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연초 예상 열 가지 중 다섯 가지만 적중해도 '고수'로 쳐줄 정도로 예측이 어렵다. 워낙 변화무쌍해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일쑤다. 앞으로 10년 동안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도도한 흐름만 얘기하면 크게 빗나가진 않는다.

IT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가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혁신적인 기업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 지난 10년 동안은 애플이 혁신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은 2001년 아이팟을 내놓아 음악 시장 판을 바꿨고,2007년에는 아이폰을 내놓아 휴대폰 시장과 이동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지금은 아이패드를 내놓고 미디어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야기를 아이패드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이패드는 종이책 종이잡지 종이신문 등을 디지털로 바꾸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 4월3일 아이패드 발매 후 폰 메이커,PC 메이커 가릴 것 없이 일제히 태블릿 개발에 뛰어들었다. 2011년에는 태블릿 경쟁이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은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 PC'를 앞당기는 과도기 디바이스(device)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컴퓨터를 몸에 지니고 다니길 희망한다. 조건이 있다. 지니고 다녀도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성능이 떨어지지도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디바이스가 작아야 하고,손가락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쉽게 입력할 수 있어야 하고,눈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태블릿은 몸에 지니고 다니기엔 다소 불편하다. 화면도 데스크톱보다는 작다. 이런 약점은 플렉시블(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면 해결된다. 스웨덴 디바이스 디자인 회사 TAT가 만든 동영상이 작년 하반기에 화제가 됐다. 2014년이 되면 다양한 형태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모바일 디바이스에 적용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동영상이다. 삼성도 비슷한 예고 동영상을 만들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도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3,4년 뒤 본격적으로 모바일 디바이스에 적용되면 태블릿이 7인치가 좋냐,10인치가 좋냐는 논쟁은 우스운 얘기가 된다. 볼펜처럼 생긴 디바이스에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뽑아 신문 잡지를 볼 수 있게 된다.

태블릿이든 스마트폰이든 모바일 디바이스는 아직 성능에서 PC에 뒤진다. 그러나 성능을 PC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올해는 멀티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HP 에이서 델 등 메이저 PC 메이커들이 태블릿과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어 PC와 태블릿-스마트폰의 경계가 빠른 속도로 허물어질 것으로 보인다.

디바이스의 성능을 슈퍼컴퓨터급으로 높일 필요는 없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활성화되면 디바이스 성능을 강화하지 않아도 된다. 각종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콘텐츠 등을 클라우드(서비스 사업자의 서버)에 저장해두고 디바이스에는 구동에 필요한 간단한 프로그램만 탑재하면 된다. 아마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이미 클라우드 컴퓨팅에 전력을 쏟고 있다.

구글이 개발 중인 크롬 운영체제(OS)와 이를 탑재한 크롬 노트북은 성공 여부를 떠나 앞으로 디바이스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암시해준다. 크롬 OS는 브라우저를 겸하는 가벼운 OS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처럼 디바이스를 바로 구동하고 바로 끌 수 있다. 크롬 노트북은 삼성 에이서 등이 개발 중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고 클라우드 컴퓨팅이 보편화되면 간단한 기능만 갖춘 플렉시블 디바이스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 어떤 컴퓨팅이든 할 수 있다. 이 컴퓨팅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미 스마트폰에 적용된 음성검색과 에릭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말하는 '자동검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주인을 따라다니는 '로봇비서'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초보 단계의 로봇비서다. 음성인식 기술이 적용되면서 스마트폰이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말로 검색하고 말로 행선지를 알려줄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동검색이다. 로봇비서는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기분이 어떤지,무엇을 하려 하는지 안다. 따라서 궁금한 것을 제때 찾아서 알려준다. 가령 광화문에서 서울타워를 바라보며 "저게 뭐지?"라고 물으면 몸 어딘가에 있는 디바이스에서 "그것은 서울타워입니다.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회전식당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해줄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흐름이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주도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이런 서비스가 유행에 그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진화할 것이라고 본다.

기자는 테크놀로지에 관한 한 '2010년은 안드로이드폰의 해''아이패드의 해'라고 쓰곤 했다. 2011년은 '태블릿의 해''멀티코어폰의 해'가 될 것이라고 본다. 태블릿 신제품이 쏟아지고 스마트폰에 멀티코어가 적용되면서 PC를 닮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시대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