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료를 내지 않고 도로에서 주행할 수 있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무료 도로인 이상 누구나 들어오겠다면 막을 수 없고(비배제성) 그로 인해 도로가 꽉 막혀버리면 도로 기능은 상실되고 만다. 안 막히는 도로에서는 다른 사람이 진입해도 나의 도로 사용이 방해받지 않지만(비경합성),막히는 도로에서는 진입이 늘어날수록 교통 혼잡이 더해져 나의 도로 사용도 그만큼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경합성).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공유자원의 비극'이다.

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로 인해 딜레마에 빠졌다. 무제한 요금제를 시작할 때만 해도 현재의 네트워크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지금의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월 5만5000원만 내면 요금폭탄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껏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상당수 고객들이 이 요금제를 택한 것이다.

결과는 예상 밖의 트래픽 폭증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무제한 요금제가 도입된 이후 스마트폰을 아이패드,갤럭시탭에 연결해 사용하는 등 이동통신 접속기기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트래픽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서비스가 갑자기 끊기거나 네트워크 접속이 불안정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고,소비자들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무제한 서비스가 모바일 생활의 대변혁을 몰고 왔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후유증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통신사들이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시스코는 스마트폰 이용자의 무선인터넷 소비용량이 일반 휴대폰 이용자보다 30배나 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도 사정이 다를 것이 없다. 최근 KT는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를 내놨다. 스마트폰 이용자의 무선인터넷 소비용량은 일반 휴대폰 이용자보다 21배나 많았고,태블릿PC 이용자의 경우는 스마트폰의 7배였다.

그러나 망은 무제한이 아니다. 지난해 8월 SK텔레콤을 시작으로 통신 3사가 무제한 요금제를 들고 나왔지만 이대로 가면 어떤 통신사도 네트워크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무제한 요금제가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통신사들은 무제한 요금제 재검토에 들어갔고,인가권을 쥐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눈치를 본다는 얘기가 들린다. 어떤 경우든 지금보다는 이용자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요금제도가 후퇴할 것이 뻔해 소비자의 반발이 작지 않을 것이고,요금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다시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도대체 누가 통신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것인가. 눈앞의 고객잡기에 눈이 멀어 철저한 준비도 없이 무제한 요금제를 들고 나온 통신사들도 문제이지만,요금제 약관 등의 인가권을 다 쥐고 있는 방통위에도 책임이 분명히 있다. 방통위가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다면 그 자체로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면 방통위가 모바일 혁명에 뒤처진 정책적 실패를 어떻게든 가려보고자 포퓰리즘적 요금제로 소비자를 현혹하려고 분위기를 몰아갔던 측면도 없지 않다.

망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정부는 자랑해 왔지만 이른바 스마트 혁명을 맞을 준비가 전혀 안돼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통신정책의 실패다. 합리적 요금제에 대한 공론화와 함께 망 투자를 유인할 대책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앞서 말한 대로 망이 공유자원으로 전락해 비극이 더 빨리 올 뿐이다. 불행히도 지금의 방통위는 그럴 능력이 없어 보인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