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27년만의 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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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의 건의로 지난해 연말 전방 국군부대 위문을 다녀왔다. 어디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1980년대 초반 내가 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던 최전방 2사단으로 결정했다. 제대 후 30년 가까이 전우애를 나누고 있는 노도(怒濤)회 회원들이 이 소식을 듣고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2010년을 나흘 남겨둔 날,역전의 용사(?) 10여명은 강원도 양구를 향해 미니버스에 올랐다. 밤새 내린 폭설로 경춘고속도로 주변의 산하는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한폭의 풍경화였다.
폭설로 인해 한 시간가량 지연됐으나 노도부대 사령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네 시간 동안 우리는 군복무를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김 병장은 보초 근무를 나갈 때 옷을 너무 껴입어서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이야기,양 병장은 졸병 때 페치카 당번을 하다가 불을 꺼트려 팬티 바람으로 눈 덮인 연병장을 수십바퀴 돌던 이야기,정 병장은 제대할 때까지 유조차 한 대 분량의 소주를 마셨을 거라는 이야기,잠을 잘 때 이를 보득보득 가는 버릇 때문에 '조스'라고 불리던 이 병장은 그 와중에도 뒷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령부에 도착하자 사단장님이 참모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주셨다. 그러자 왁자지껄 떠들던 전우들은 모두 바짝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한번 졸병은 영원한 졸병이라고,사단장님을 보자 전직 졸병들이 모두 얼어버린 것이다. 부대 현황에 대한 최첨단 동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밤새 보고용 차트를 만들던 군복무 시절을 회상하며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근에 있는 전차중대로 이동해 각종 무기와 장비,사병들의 군수품과 내무반을 시찰한 후 사병 식당에서 병사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둘째 아들 또래의 병사들은 27년 전의 우리 모습보다 표정이 훨씬 밝고 늠름해 보였다. 집에서 먹는 밥보다 더 맛있는 짬밥을 먹으며 마주 앉은 중대장에게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아니냐며 추궁하기도 했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직접 와서 보니 과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세 시간여 짧은 만남임에도 정이 들었는지 사단장님과 작별하려니 무척 서운했다. 마음씨 좋은 형님 같은 사단장님은 엄격함보다는 자상함이 몸에 밴 덕장이었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사단장님께 노도전우들은 '일동 차렷,형님께 경례!'하며 사제(私製)식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점호 때마다 지겹게 부르던 소양강처녀를 어느새 합창하고 있었다. 27년 만에 귀대를 한 우리 노도회원들은 비록 고생스럽고 힘든 세월이긴 했지만 그 시절 나라의 부름에 당당히 임했다는 뿌듯함에 취해 마냥 행복함을 느꼈다.
정두언 < 한나라당 국회의원 dooun4u@hanmail.net >
2010년을 나흘 남겨둔 날,역전의 용사(?) 10여명은 강원도 양구를 향해 미니버스에 올랐다. 밤새 내린 폭설로 경춘고속도로 주변의 산하는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한폭의 풍경화였다.
폭설로 인해 한 시간가량 지연됐으나 노도부대 사령부대에 도착할 때까지 네 시간 동안 우리는 군복무를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김 병장은 보초 근무를 나갈 때 옷을 너무 껴입어서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이야기,양 병장은 졸병 때 페치카 당번을 하다가 불을 꺼트려 팬티 바람으로 눈 덮인 연병장을 수십바퀴 돌던 이야기,정 병장은 제대할 때까지 유조차 한 대 분량의 소주를 마셨을 거라는 이야기,잠을 잘 때 이를 보득보득 가는 버릇 때문에 '조스'라고 불리던 이 병장은 그 와중에도 뒷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령부에 도착하자 사단장님이 참모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주셨다. 그러자 왁자지껄 떠들던 전우들은 모두 바짝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한번 졸병은 영원한 졸병이라고,사단장님을 보자 전직 졸병들이 모두 얼어버린 것이다. 부대 현황에 대한 최첨단 동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밤새 보고용 차트를 만들던 군복무 시절을 회상하며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근에 있는 전차중대로 이동해 각종 무기와 장비,사병들의 군수품과 내무반을 시찰한 후 사병 식당에서 병사들과 점심을 함께했다. 둘째 아들 또래의 병사들은 27년 전의 우리 모습보다 표정이 훨씬 밝고 늠름해 보였다. 집에서 먹는 밥보다 더 맛있는 짬밥을 먹으며 마주 앉은 중대장에게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아니냐며 추궁하기도 했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직접 와서 보니 과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두세 시간여 짧은 만남임에도 정이 들었는지 사단장님과 작별하려니 무척 서운했다. 마음씨 좋은 형님 같은 사단장님은 엄격함보다는 자상함이 몸에 밴 덕장이었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사단장님께 노도전우들은 '일동 차렷,형님께 경례!'하며 사제(私製)식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점호 때마다 지겹게 부르던 소양강처녀를 어느새 합창하고 있었다. 27년 만에 귀대를 한 우리 노도회원들은 비록 고생스럽고 힘든 세월이긴 했지만 그 시절 나라의 부름에 당당히 임했다는 뿌듯함에 취해 마냥 행복함을 느꼈다.
정두언 < 한나라당 국회의원 dooun4u@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