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서울 영등포역 앞.밤 10시를 넘기며 수천명의 인파가 복합쇼핑몰인 경방타임스퀘어로 몰려들었다. 시계바늘이 자정으로 향하자 1층 로비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 로비에선 '슈퍼스타K'가 낳은 대중스타 허각 · 강승윤씨를 비롯해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이 복합몰 개발의 주역인 김담 경방타임스퀘어 대표는 2층 난간에서 로비를 내려다보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영등포역 앞 상권에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일시에 몰려온다는 것은 이 복합몰이 완공된 2009년 9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홍등가와 칙칙한 먹자골목,유흥업소가 뒤섞여 상권은 낡을 대로 낡았다. 2006년 말까지만 해도 이곳 대로변은 불법 게임방들의 온상이었다. 그러던 곳에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복합쇼핑몰의 힘이다.

복합몰 안에는 백화점,대형마트,영화관,호텔과 같은 대형 시설만 있는 게 아니다. 패션 푸드 레저 문화 업종의 중 · 소규모 점포 200여개가 골고루 자리잡고 있다. 상시 근무하는 인원만 1만5000여명.고용창출 효과가 만만찮다. 개점 이후 1년간 다녀간 고객이 7000만여명에 이른다고 경방 측은 추정했다. 이 바람에 영등포역 지하상가도 신바람이 났다.

용산역사에 들어선 복합쇼핑몰 아이파크몰도 2004년 10월 문을 열 당시엔 집단상가(스페이스나인)에 불과했다. 아무런 매력이 없는 상가에 놀러올 소비자는 아무도 없었다. 점포를 분양받은 3000여 투자자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허사였다. 집단상가에서 상가 활성화를 책임질 사람은 피분양자와 상인들 자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공회사인 현대산업개발이 수렁에 빠진 집단상가 활성화에 나섰다. 최동주 현대산업개발 사장(당시 아이파크몰 사장)을 구원투수로 내세웠다. 최 사장은 투자자와 상인,민자역사 주주들을 설득해 상가를 복합몰로 변신시켰다. 상가 개발자와 투자자,상인 등 3자가 상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아이파크몰은 8000여명의 종업원이 연간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몰링 문화'의 명소가 됐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동양 최대 쇼핑몰을 표방하던 가든파이브는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서울시와 SH공사는 애당초 복합몰(쇼핑센터)과 집단상가를 혼동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쇼핑상가와 공구상가,아파트형 공장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복합유통단지라고 떠들 수 있었을까. 그것도 1조3000억원이란 엄청난 빚을 내 벌인 사업을….공공기관을 믿고 점포를 분양받은 투자자들만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늬만 복합쇼핑몰'인 분양 상가의 처참한 몰골이다.

최근 전국에 복합몰 건설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복합몰은 건물 완공 뒤 '나몰라라' 하면서 분양이익만 챙기는 집단상가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임대방식을 원칙으로 개발(관리)업체와 입점업체가 상생하는 업태다. 복합몰이 많아지면 전문점들은 굳이 판매수수료가 26~37%에 이르는 백화점에 기를 쓰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 자라 H&M 유니클로와 같은 세계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복합몰이다. 전문점과 복합몰은 동반 성장하는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선 복합몰이 급성장 가도를 달리면서 백화점이 우월적 지위를 잃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국내 유통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강창동 유통전문 기자·경제학 박사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