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감시기구'로의 탈바꿈을 선언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한 지 사흘 만에 가격불안 품목을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특별대책반을 신설하는등 인사 및 조직을 물가관리 체제로 개편했다. 또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인사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범정부 차원에서 연초부터 급등하는 물가를 잡는 게 다급한 일이지만 공정위가 본연의 역할을 도외시한채 물가잡기에 올인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할 일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기본 책무이다. 물론 공정위가 물가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고 특정 제품의 과도한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격 인상이 몇몇 업체의 독과점에서 비롯됐거나 담합에서 초래됐다면 이를 시정함으로써 가격 인상을 막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것은 불공정 행위를 단속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이지 가격을 인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칼을 빼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 위원장이 공정위를 물가기관으로 개편한 것은 시장가격을 직접 컨트롤하기 위해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위협으로 느껴질 소지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물가관리에 신경을 써달라고 지시한 후 곧바로 인사 및 조직개편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중국발 인플레이션 등 공급 측면의 비용 상승에서 비롯된 만큼 환율안정,공급량 확대,유통구조개선 등 종합 처방이 필요하다. 수요 측면에서도 가격상승 압력이 커질 경우를 대비해 금리정책까지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단순히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3%대 물가안정이라는 숫자 지키기에만 급급할 경우 그 효과는 오래 가기 어렵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다. 시장질서가 깨지는 것은 물론 정부 정책의 신뢰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한때 대기업 규제 기관으로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이제 물가관리 전위부대로 변신함으로써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은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국내 기업 간 불공정행위는 물론 외국기업의 담합으로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이 입는 피해를 구제하는 등 경제 글로벌화에 따른 기능 재편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수십년 전의 물가통제를 연상케 하는 정책 선회로 고유 업무를 등한시할 경우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공정위가 물가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은 길게 보면 재앙이고 국제 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전직 공정위 간부의 따끔한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