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신년 연설에서 복지분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중산층에까지 복지 혜택을 늘리고,100세 장수 시대를 대비해 맞춤형 종합 플랜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야당인 민주당은 한 술 더 떴다.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무상급식으로 본 재미를 내년 선거까지 이어갈 심산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지금 복지전쟁 중이다. 청와대와 여 · 야 가릴 곳이 없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경제적 번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나눠먹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들이 한 순간에 어려움에 빠져 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정치인은 없다. 그래서인지 정치인들은 복지를 외치면서도 정작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들을 키우는 데는 무관심하다.

이 대통령은 3년 전 취임 당시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전봇대'를 과감히 뽑아냈다. 하지만 달라졌다. 신년 연설에서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우리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1등 제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다. 이 대통령이 '세계 1위'라고 자랑스럽게 꼽은 디스플레이 메모리반도체 조선이 올해에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 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했다. 지난해 6%가 넘는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수출 7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를 잘 치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세계 질서를 만들어가는 나라가 됐다고 선언했다. 그런 자신감이 중산층까지 포함시킨 복지 플랜을 내놓은 배경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앞으로도 번영은 계속될 것이라는 허황한 믿음이 확산되고 있는 게 문제다. 일본 소니가 하루아침에 적자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으면서도 우리에겐 위기의식이 없다.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평등과 분배 복지를 애기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원래 그랬으니까. 진짜 문제는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다고 자처하는 보수 정당이다. 기업의 연구개발과 신사업 진출,생산성 향상을 독려하고 국민의 근로의욕과 자립정신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하는 정당이 복지 타령에 빠졌다.

오른쪽 날개가 왼쪽으로 기울면 새는 추락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던 영국,모든 국민이 잘 사는 '위대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섰던 미국이 1970년대 최악의 경제 위기에 빠졌던 것도 보수정당이 기업가 정신과 근로의욕 북돋우기를 포기한 탓이 컸다.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원하는 것은 줄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부모의 능력은 언젠가 고갈된다. 정부와 정치인들도 복지 혜택 없이 국민이 살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인들은 더 많은 국민이 정부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열망하고 있다. 오랜 기간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다보니 대한민국이 격렬한 생존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은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를 G20 세대로 부르겠다"며 자부심 넘친 표현을 썼다. 하지만 기자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훗날 G20이 '과거의 영광'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G20의 커다란 성취에 취해 대한민국의 성장판이 멈춰버린 시기 말이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