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계정 설치 2조 마련
PF 부실 12조4000억 추정 … 추가로 드러나면 감당 못해
4대 금융지주 앞세워, 우선 '시장 안심' 메시지
"들여다보니 이미 게임이 끝나 있었다. 부실이 너무 심각하다. "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9일 "금융지주사들의 부실 저축은행 인수의사 표명은 문제의 본원적 해결을 위한 단계별 대책의 첫 단계로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메시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금융시장의 최대 불안 요인인 저축은행 부실 처리를 위해 정부가 대응 방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다.
이 관계자는 "강력하게 초기 대응을 하지 못해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을 금융당국은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논리와 필승 전략을 마련한 만큼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밀고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확 달라진 당국의 인식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3일 취임한 뒤 금융당국의 태도가 달라졌다. 금융시장의 부실 요인을 어물쩍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해졌다. 당국은 저축은행의 부실과 가계부채 문제가 겹쳐 터지면 '친서민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권에 메가톤급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 교체된 것도 저축은행 문제를 해결하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터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핵심 금융당국자들의 입에서 "심각한 정도를 넘어 시간이 없다. 국지전은 당장 해치워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상황"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규모는 12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부실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장 나자빠질 대형 저축은행들이 있고,나머지의 부실도 만만치 않다"며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주지 않고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진단했다. 정부는 금융지주들의 저축은행 인수 의사 표명으로 '시장심리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문제가 터지더라도 '은행과 정부가 대안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4월부터 기금 투입 기대
정부는 다음 단계로 예보기금에 공동계정을 설치,저축은행 구조조정에 투입할 '실탄'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은행들의 부실 저축은행 인수를 유도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기도 하다.
예보기금은 은행과 금융투자(증권) 생명보험 손해보험 종합금융 저축은행 등 6개 금융권역이 부실에 대비해 쌓아놓은 돈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은행(4조4000억원) 금융투자(3000억원) 생보(2조9000억원) 손보(6000억원) 종금(200억원) 저축은행(2조9000억원 적자) 등 5조3200억원이 기금으로 남아 있다.
금융위는 공동계정 설치를 위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2월 국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4월부터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기금을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동계정이 생기면 타 계정에서 최소 1조5000억원 이상을 차입하고,공동계정으로 들어오는 연간 약 7500억원의 기금을 합쳐 2조원이 넘는 돈을 장기 저리대출,자산매수,출자 · 출연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올해 사용할 수 있는 3조5000억원의 구조조정기금도 활용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본원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과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은행들도 저축은행 인수로 상당한 비즈니스 기회를 얻게 되는 만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그동안 공동계정 설치에 반대해온 은행 보험 등 금융권의 기류는 김 위원장 취임 이후 찬성 쪽으로 급선회했다.
◆강력한 퇴출 절차 밟을 듯
금융당국은 '실탄'이 확보되는 시기에 맞춰 부실 저축은행의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는 절차에 돌입할 방침이다. 저축은행의 감자와 대주주 유상증자,자산매각과 같은 자구노력을 유도하되 회생이 불가능하거나 대주주의 횡령 등 범법 사실이 드러나는 곳은 영업정지나 검찰고발 등을 통한 강력한 퇴출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금융지주가 인수할 저축은행 후보들이 나타나면 지주사와 대주주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도록 해 인수 · 합병(M&A)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실탄이 확보되고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짝짓기가 진행될 것"이라며 "금융지주가 부실을 떠안는 방식으로 M&A가 진행되지 않도록 정부는 다각도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