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비중을 낮춰야 했습니다. "

안명규 LG전자 고문(62 · 사진)은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가진 강연에서 북미 시장에서 LG전자가 단시일 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었던 비결로 OEM 비중을 낮춘 전략을 꼽았다. 그는 LG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2005년 45%였던 OEM 생산 비중을 2009년 10% 수준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생산부서에서 일감이 준다고 반발했지만,끈질기게 설득해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LG 제품을 아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명 이상이 브랜드를 인지하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마케팅 전략을 소개했다. 안 고문은 미국에서 LG가 고가 브랜드 이미지를 뿌리내리기 위해선 단순히 광고를 늘리는 것만으로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 · 생산공정 · 공급망관리(SCM) · 서비스 분야에서 고객을 만족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려면 브랜드 이미지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초창기에는 딜러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해야 하고,매장 판매사원에 대해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노력을 통해 고객들이 LG 제품을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LG 드럼세탁기는 2007년 1월 월풀을 제치고 미국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고가의 다문형 냉장고 시장에서도 LG는 수위를 지키고 있다. 와튼스쿨이 리더십 강좌의 일환으로 마련한 초청 강연에는 200여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강연 직후 있었던 질의 응답 내용을 정리한다.

▼OEM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공장 사람들은 가능하면 더 많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들은 마케팅에는 관심이 없다. 공장을 더 가동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브랜드를 심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했다.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나를 믿어줄 것을 요청했다. 나를 믿어주면 LG 브랜드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OEM 생산을 중단할 순 없었다. 단계별로 서서히 줄여나가는 전략을 택했다. 이런 노력 없이는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심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LG는 예상보다 단시일 내 미국에서 LG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

▼日 · 中 전자업체와의 경쟁구도는.

"수십 년 동안 소니 파나소닉 산요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이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마케팅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 회사들은 더 빠르게 성장했다. 10년 후에는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국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브랜드 문제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

▼LG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밀린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해 경쟁사에 비해 스마트폰을 늦게 선보였다. 통찰력(인사이트)이 부족했던 것이다. LG전자 최고경영자들이 경질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신제품을 적기에 개발해 고객에게 선보이는 데 좀 더 집중해야 했다. 늦긴 했지만 LG는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옵티머스 원'을 선보였다. 짧은 시간 내 100만대를 팔 정도로 시장 반응도 좋은 편이다. LG의 저력으로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을 것으로 확신한다. "

▼지역별 마케팅 전략의 차별화는.

"LG의 브랜드 전략은 시장이나 국가에 관계없이 항상 같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가에서 성공한 만큼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같은 전략 시장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 한국상공회의소(KOCHAM)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워싱턴 정가를 방문해 의원들에게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인준을 설득할 때도 급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LG는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고가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LG의 현지 인력관리 전략은.

"세계화(글로벌리제이션)를 위해선 해외 계열사를 철저히 현지화(로컬리제이션)해야 한다. 세계화와 현지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미국에 왔을 때 미국 시장 특성을 잘 알고 있는 현지 인력이 더 일을 잘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다양한 산업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주요 직책을 현지 전문가들이 맡고 있다. LG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고급 인력을 뽑기가 수월해졌다. 인력뿐 아니라 제품도 현지화해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은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과 다르기 때문이다. LG는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제품과 인력 현지화는 사업 성공의 핵심 열쇠다. "

▼어떤 과정을 통해 현지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만들 수 있나.

"소비자의 행태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그게 혁신이고 차별화 전략이다. 리더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도록 연구개발팀을 독려해야 한다. 미국에 근무하면서 한국에 출장갈 기회가 있으면 항상 제품 개발 부서와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노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들은 혁신적인 제품에만 눈길을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으면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또 다른 제품을 수월하게 출시할 수 있게 된다. "

필라델피아=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안명규 고문은…

1948년 충남 공주생으로 1976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전자에 입사했다. 입사 이후 줄곧 해외 영업을 담당했다. 1985년에는 독일법인장을,1991년에는 시카고 지사장을 맡았다. 1999년부터 본사에서 홈 어플라이언스 해외 영업을 하다 2004년부터 2009년 말까지 북미지역본부를 이끌었다. 현재는 LG전자 상임고문으로 현지 경영대학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에는 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