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자진 사퇴를 요구하면서 청와대는 치명상을 입게 됐다. 지난해 '8 · 8 개각' 때 총리와 지식경제부 장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또 인사 실패가 재연돼 엄청난 후폭풍을 만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이른바 '함바 게이트'에 청와대 감찰팀장과 이명박 대통령 측근 인사 연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현 정부도 '집권 3,4년차 레임덕 증후군'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역대 정권 3,4년차 증후군

역대 어느 정권이든 시기와 양상이 조금씩 다를 뿐 집권 하반기에 레임덕을 숙명처럼 겪었다. 특히 집권 3,4년차에 증후군처럼 터지는 이른바 게이트 파문은 대통령을 무력화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에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과제를 들고 나오면서 공직자 사정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집권 4년차에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 게이트로 권력의 무게 중심은 이회창 전 총리 쪽으로 급속히 쏠렸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 1년 동안 '식물 대통령'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새천년민주당 창당,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그렇지만 집권 3년차인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패배하면서 제1당에 올라서지 못했다. 이후 정현준 · 진승현 · 이용호 게이트가 잇달아 터지면서 권력의 추와 정보가 야권으로 몰리는 레임덕이 본격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2005년 초 '전방위 부패 청산'을 들고 나오면서 공직사회를 바짝 긴장시켰다. 하지만 임기 후반기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행담도 개발 등 스캔들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권력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MB 정부도 전철 밟나

이명박 정부도 '3,4년차 레임덕 증후군'에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여당인 한나라당이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반기를 들었다. 당은 이제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최근 '함바 게이트' 비리에 대통령 측근들의 연루 의혹이 터져 나왔다는 것은 레임덕 증후군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가 "정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을 비롯한 고급정보들이 야당에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레임덕 증후군은 이 대통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난해부터 잉태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출범 2주년을 전후로 '권력형,토착형,교육 비리' 등 이른바 3대 비리와 전쟁을 선포하며 집권 3년차의 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지난해 말엔 "일하는 사람에겐 권력 누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6월 터진 이른바 '영포 게이트'는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 훼손에 불을 지폈다.

영포 게이트는 민간인 김종익씨가 2008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불법사찰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고,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영일 · 포항지역 출신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포 게이트는 여권 내 권력 투쟁 양상으로 확산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영포회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던 박영준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인규 전 윤리지원관실 지원관 등을 겨냥해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수도권의 한 여당 의원은 "지난해 최대 국정 과제로 삼았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데 이어 '6 · 2 지방선거' 참패,영포 게이트,8 · 8 개각 실패 등으로 조기 레임덕 증후군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여당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임명권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조기 레임덕을 촉발시킨 상징적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함바 게이트'는 권력 중심부를 겨냥하고 있다. 비선조직,사조직,권력 사유화,측근 비리,인사 실패 논란 등 역대 정권에서 레임덕을 촉발시킨 단골 메뉴가 현 정부를 향하는 모양새다.

홍영식/이준혁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