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근심을 잊게 하는 물건이라고 누가 말했는고/ 온갖 생각과 슬픔이 술 취한 뒤에 생겨나네/ 두려움에 광기가 모아져 입으로부터 일어나고/ 불만에 부끄러움도 없으니 낯 붉게 만드네/ 문을 열고 걸어 나가려 하니 몸은 벌써 넘어지고.'조선 순조 때 문신 고정봉의 글이다.

술, 특히 과음이 온갖 화(禍)의 씨앗이요,만병의 근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 땅의 술꾼은 계속 늘어만 간다. 성인 음주율의 경우 남성은 2005년 72.5%에서 2008년 82.6%로,여성은 2005년 35.1%에서 2008년 60.6%로 높아졌다.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 음주율은 더 심각하다. 1989년 32%에서 2008년 82.5%로 2배 이상 급증했고,2008년 여성 청소년의 음주율은 45.7%로 남성 청소년 비율(39.8%)을 추월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술을 들이키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탓도 있을 테고,'영업과 회식을 위해' 마시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술은 답답하고 기막힌 현실을 잊기 위한 방편인 수가 많다.

술병 치료비가 4년간 2배 가까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음주가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술로 인한 질환의 건강보험 진료비가 2009년 1688억원으로 2005년 866억원의 1.95배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진료비뿐이랴.2009년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성폭행 등 강력사건 3건 중 1건은 술로 인한 범죄라고 보고돼 있다. 그런가 하면 사춘기 여성의 음주는 성장 및 정상 생리주기를 방해하고 임신부 여성의 음주는 태아에 영향을 끼쳐 청소년 시절 공격적이고 대인관계에 문제를 보이는 건 물론 성인이 됐을 때 반사회적이고 부적절한 성적 행동으로 발현된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직책도 아닌 감사원장에 내정된 이가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보기 힘든 로펌에서 일곱 달에 7억원을 받고도 '법적으로 문제 없고 세금 뺀 실수령액은 4억원밖에 안된다'고 했다는 마당이다. 7억원이면 한 달에 200만원짜리 봉급쟁이가 30년,4억원이라 해도 17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130만원짜리 일자리라도 없나 헤매는 이들에겐 취하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한 이땅의 술병 치료비가 줄어들 가망이라곤 없어 보인다. 서글픈 세상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