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48)는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경제학자다. 시장 만능주의와 영 · 미식 금융 규제완화를 비판하고 복지국가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해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를 "시장 만능주의를 경계하는,비주류 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국가적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시장경제를 하지 말자는 반론에 부딪힐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경제학계의 논쟁 한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알리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장 교수를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1시간30분가량 만났다. 자신의 논리를 펴는 데 전혀 거침이 없었다. 은행세를 더 높이고,토빈세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세는 비(非)예금성 외화부채에 최대 0.5%의 거시건전성부담금(은행세)을 부과하는 것이고,토빈세는 국경을 넘는 단기 외환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1978년에 낸 아이디어다.

장 교수는 또 "낮은 복지 수준으로 인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공기업이나 의사,변호사 같은 안전한 직업만 선호하고 과학자나 공학자를 기피한다"며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단기적으로는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금융 규제론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제가 '신흥국은 자본통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는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자본 자유화를 한창 전파하고 다니던 때니까요. 요즘은 IMF가 자본통제를 권고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IMF의 기가 죽은 거죠.1980년대 금융 빅뱅(대대적인 금융 규제완화)을 주도했던 영국도 지금은 '금융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반성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국도 은행세 같은 자본통제 방안을 내놨습니다.

"대형 은행이 쓰러지면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세는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게 책정해야 합니다. 토빈세도 필요합니다. 금융이 실물경제보다 지나치게 빨리 움직이면 실물경제는 금융의 노름판 판돈(투기 대상)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

▼어떻게 해서 금융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첫째는 영국의 금융 빅뱅입니다. 외국 자본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파운드화가 과대평가되고 제조업체들이 다 죽는 걸 보면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이후 아시아 외환위기가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파생상품이 뭔지 몰랐는데 그때부터 금융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니다. 개도국은 금융이 아니라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확고하게 갖게 됐습니다. "

▼'보편적 복지냐,선별적 복지냐'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혜택을 보는 복지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이 적습니다. 대기업 정규직은 종신고용이 가능하고 사내 복지도 잘 돼 있지만,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고용자는 그렇지 못해 미래가 불안합니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진취적인 직업 선택을 꺼리는 겁니다. "

▼미국은 복지가 약하지만 실리콘밸리처럼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까.

"그건 미국의 파산법이 전 세계에서 기업에 가장 유리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파산법 11조에 따라 기업 파산 후 6개월간은 법원이 채권자로부터 기업을 지켜줍니다. 이 기간에 구조조정을 하거나 채무 삭감을 통해 재기할 수 있는 거죠.복지국가는 '노동자의 파산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실직해도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는 얘기죠."

▼유럽 재정위기가 과도한 복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럽 재정위기는 주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와 세수 감소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리스는 능력에 비해 복지가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복지국가가 모두 문제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계 최대 복지국가인 스웨덴이나 핀란드는 2000~2008년에 연평균 2.4%와 2.8% 성장해 미국(1.8%)보다 성장률이 높았습니다. "

▼한 · 미 FTA에 비판적인 이유는 뭡니까.

"자동차처럼 우리가 잘 하는 몇몇 분야에선 한 · 미 양국이 서로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선진국과 FTA를 하면 개도국은 장기적으로 선진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극단적으로 우리가 1960년대에 미국과 FTA를 했다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같은 회사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

▼지금은 1960년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일본과 같은 최고 선진국과 비교할 때 노동 생산성이나 1인당 국민소득이 50% 정도밖에 안됩니다. 조립 분야는 우리가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지만 부품 · 소재나 자본재는 아직 약합니다.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많이 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닙니까. "

▼한국은 내수시장이 좁고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FTA로 경제 영토를 넓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국과 EU의 공산품 관세는 평균 3%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그 정도 관세 차이 때문에 흥하거나 망하는 제품을 만드는 단계는 지났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이 수출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가격에 비해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지 FTA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

▼청년 실업이 심각합니다.

"제조업 생산성이 높아지면 고용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어느 나라나 고용은 결국 서비스업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영장을 예로 들면 인명 구조원이 많은 수영장은 그렇지 않은 수영장보다 서비스의 질이 높습니다. 정부는 수영장의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고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잉 고용은 나쁘겠지만요. "

▼올해 세계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뭐라고 보십니까.

"미국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재정적자 감축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맞지만 단기적으로는 재정지출이 감소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세수가 줄어 다시 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나 그리스가 이런 상황인데 미국이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더블딥(경기가 반짝 상승했다 다시 하강하는 현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

▼지난해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출간한 뒤 영국에서 가디언(진보성향의 일간지)이 '노동당수는 장 교수를 점심에 초대할 필요가 있다'고 썼던데요.

"노동당에선 안 불러주는데 오히려 보수당 쪽 인사들이 저를 몇 번 초대했어요. 사실 보수당 내에는 두 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처주의로 불리는 시장주의고 다른 하나는 사회 통합을 중시하는 온정주의입니다. 현재 보수당 정부 내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온정주의 쪽,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시장주의 쪽인데 온정주의 쪽에서 제 얘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

▼영국에서도 '장 교수의 정체가 헷갈린다'는 얘기가 나옵니까.

"스탈린이 보면 다 우파고 히틀러가 보면 다 좌파 아니겠습니까. 사실 나라마다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이 있는데 저는 그런 거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자꾸 헷갈리나 봅니다. "

▼존경하는 경제학자는 누구입니까.

"공부도 좌우 가리지 않고 해서 특별히 어떤 사람이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드네요. 사실 제 학파가 뭔지도 모르겠어요(웃음).듣기 재미있으라고 제가 하는 말 중 하나가 왼쪽으로 마르크스부터 오른쪽으로 하이에크까지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는 겁니다. 유명한 사람은 유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꼭 이론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안목이라든가 방법이 배울 점이 있거든요. "

▼새해 소망은 뭡니까.

"국제 금융 개혁이 빨리 마무리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5년,10년 뒤 금융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처음 일(금융위기)이 났을 때는 빨리 고칠 것처럼 하더니 조금 가라앉으니까 지금은 슬슬 빼고 있습니다. "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