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하자마자 사실상 '레임덕'을 맞이한 한 정치인의 좌충우돌 행보가 유럽 주요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자국 경제가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각종 돌출 행보를 이어온 데다가 '비민주적'이라는 미디어법으로 언론 통제에 나선 오르번 빅토르 헝가리 총리(사진) 얘기다. 그가 올 상반기 유럽연합(EU)이사회 순번의장을 맡게 되자 EU 내에서 걱정과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EU 여론, 순회의장 지위 인정 안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EU 순회의장국이 된 헝가리의 오르번 총리를 (엉뚱한 일을 하지 못하게끔) '스마트하게' 다루는 게 EU의 주요 과제가 됐다"고 보도했다. AFP통신은 "유럽의 '검은 양(문제아)' 헝가리가 구시대적 언론자유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고,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난폭한 건달로 묘사된 오르번이 EU의 멱살을 쥔 삽화를 게재하며 그에 대한 거부감을 노골화했다.

유럽 언론들이 일제히 연초부터 EU의 '얼굴마담' 역할을 시작한 헝가리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선 셈이다. 실제 지난 연말 헝가리에 순회의장국을 맡길 수 없다며 의장국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오르번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여론이 생기며 그의 지도력이 상처를 입게 된 데엔 불투명한 헝가리 경제정책과 비민주적인 언론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5월 오르번의 집권 이후 헝가리는 일방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협상을 결렬시키며 전체 유럽의 불안을 키웠다.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일 때 자국 경제 통계의 조작 가능성까지 드러내며 유럽 시장에 위기감을 가중시켰다.

◆나홀로 경제정책에 외교 마찰까지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강력한 긴축정책을 구사할 때 오르번 정권은 홀로 성장에 초점을 둔 행보로 유럽 공조를 위협했다.

유럽 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진출 기업들에 거액의 특별세를 부과하며 불만을 키우기도 했다. 무디스와 피치 등이 지난해 말 헝가리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한 배경이다. 경제 문제뿐만이 아니다. '대(大) 헝가리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슬로바키아 등 주변국과 외교 마찰까지 빚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언론 통제를 강화한 미디어법을 마련하면서 유럽 내 불신을 배가시켰다. 헝가리 미디어법은 정부 산하 미디어위원회가 '균형을 잃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보도'를 한 언론매체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미디어위가 언론사 내 문서들까지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 프랑스 등 일부 EU 회원국들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즉각 이 법의 철회를 요청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도 "오르번 총리와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압박했다.

EU 의장국 출범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 6일 오르번의 취임 기자회견에선 에너지 안보 등 헝가리가 의장국으로서 중요하게 다룰 의제에 대해선 언급조차 못했다. 오르번 스스로도 "누구도 이 같은 시작을 바라지 않을 아주 나쁜 출발"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오르번 총리가 예전에는 히틀러,무솔리니와 비교되다가 최근 들어 푸틴 러시아 총리와 비교되는 정도에서 위안을 찾는 듯하다"며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의 부상을 맞이해 유럽이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수억 유럽인의 삶을 헝가리가 결정하는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