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은 결국 시장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겁니다. "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건설 매각과정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시장에서 제기되는 각종 의문을 현대그룹이 충분히 해명하지 못해 우선협상자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설명이다.

유 사장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연기금 등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중재안'에 대해서도 "더 이상 명분도,의미도 없다"고 말해 상선 지분을 그대로 현대자동차그룹에 넘길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하이닉스의 경우 올해 중 매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매각을 두고 말이 많은데.

"채권단은 공정한 기준과 투명한 절차에 입각해 매각작업을 진행해 왔다. 본의 아니게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매각작업에 관계된 이해관계자가 많아 그 의견이 수렴되는 과정에서 혼란이 불가피했다고 이해해 줬으면 한다. "

▼현대그룹의 자금조달방안에 문제가 있었으면 처음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는가.

"작년 11월 본입찰 마감 후 30여명의 전문가들이 호텔방에서 밤샘 심사를 벌였다. 논란의 핵심이 됐던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에 대해서도 격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형식적인 요건을 다 갖춘 상황에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금출처에 대한 의혹이 있었지만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보류하기란 어려웠다. "

▼발표를 미룬 뒤 추가 자료를 요구했으면 논란이 적었을 것 같은데.

"만일 발표를 미루고 자금출처자료를 요구했으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논란이 일 것으로 판단했다. "

▼아무리 그래도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발표한 뒤 곧바로 자금출처를 문제삼은 것은 석연치 않다.

"시장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채권단도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 문제 된 부분은 별도의 절차를 통해 해결하자고 판단했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정답을 맞히면 일단 점수를 준다. 나중에 정답에 문제가 있거나 부정이 개입됐다면 그 결과를 사후에 반영한다. 이런 과정과 같다고 이해해 달라."

▼하지만 채권단이 지나치게 현대그룹을 압박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 현대그룹은 결국 시장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시장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

▼정책금융공사가 외환은행을 제치고 앞서가는 발언을 많이 했다.

"매각 주체인 주주운영위원회가 외환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3개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보니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특히 위임권을 갖고 있는 외환은행이 진두지휘를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론스타 지분매각 등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 그러지 못했다. "

▼현대그룹에서는 일반 인수 · 합병(M&A)과 달리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다고 주장하고 있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해서다.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금 어떻게 됐나. 대우건설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허술하게 짚고 갈 순 없었다. "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현대차그룹에 대해서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가.

"물론이다. 현대그룹과 똑같은 기준과 잣대로 평가할 계획이다. "

▼매각금액은 달라지는지.

"실사 결과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본입찰 때 제시한 5조1000억원에서 ±3%까지 조정할 수 있다. 사실상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좀 깎일 순 있다. 최종 매각금액은 5조원 안팎이 될 것이다. "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제시한 중재안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범현대차그룹이 불참함에 따라 의미도 없어졌다. "

▼현대그룹의 이행 보증금은 돌려주나.

"현대그룹이 여건을 만들어 줘야 가능하다. 그러지 못하면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

▼하이닉스 매각 계획은.

"인수대상자가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현재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최적의 소유 · 지배구조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1분기 내 결론이 나온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유연한 매각구조를 만들어 연내 매각에 나설 계획이다. "

▼항공우주산업(KAI)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반기 중 기업공개(IPO)를 실시한 뒤 삼성테크윈,현대차,두산인프라코어 등 주요 주주와 함께 지분 공동 매각을 추진할 방침이다. "

하영춘/이호기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