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으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결정적 징후이자 인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져들게 만드는 핵심 요인은 임금상승이다. 수요 증가로 원자재와 중간재 가격이 오르고,이를 반영해 기업들이 제품 판매가격을 올리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로 인해 높아진 임금은 다시 기업의 비용을 끌어올려 제품값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이것이 또다시 고임금을 요구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지금 국내 경제가 이런 인플레이션 악순환의 초입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종 원자재와 농수산물 가격 급등과 전셋값 상승 등 물가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계에서 '10% 이상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참았던 임금인상 목소리를 올해는 본격적으로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임금인상 억제로 노동자들의 급여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아 임금인상 압박 요인이 어느 때보다도 크다는 것이 전문기관들의 분석이다.


◆GDP와 임금 격차 확대

12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162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명목 GDP보다 19.2% 증가한 규모다. 반면 지난해 3분기 말 명목 임금은 2007년 대비 11.4% 오른 것으로 계산돼 명목 GDP 증가율이 임금 상승률보다 7.8%포인트 높았다.

같은 기준을 적용해 한국을 포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아시아 신흥시장국 등 15개국을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GDP 증가율과 임금상승률 격차는 4번째로 컸다. 인도네시아가 55.0%포인트로 가장 컸고 호주와 말레이시아가 각각 11.9%포인트와 10.4%포인트였다.

반면 최근 임금인상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중국은 그 격차가 6.6%포인트로 우리나라보다 작았다. 성장이 더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GDP 증가율이 임금 상승률을 밑돌았다. 미국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임금 상승률이 GDP 증가율보다 3.6%포인트 높았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4~8%포인트가량 임금 상승률이 더 높았다.

김효진 동부증권 연구원은 "GDP와 임금의 격차가 클수록 임금인상 압력이 높다"며 "기업이 수요 증가를 제품에 반영하면 보통 한국의 경우 세 분기가량 시차를 두고 임금인상이 본격화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한국뿐 아니라 GDP와 임금 간 갭이 커진 아시아 신흥국들도 임금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인플레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인플레 악순환 빠질 가능성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고용 증가,물가 상승 등의 수순을 보면 우리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악순환 구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과거 경험으로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임금 상승률이 지속되면서 인플레 악순환에 빠졌다"며 "최근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아시아 신흥국도 임금상승이 물가 상승폭을 더욱 가파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세계적인 동반 인플레 현상이 벌어질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2분기 3.0%에 머물러 있던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분기부터 조금씩 높아져 12월엔 3.3%로 상승했다. 올 들어 공공요금과 신선식품 가격이 뛰고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사람들의 인플레 기대 심리는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수요 인플레 압력도 커져

최근 인플레 우려는 주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외부 요인에 따른 비용측면(cost-push)이 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임금인상 압력이 현실화될 경우 소득증가로 수요가 물가상승을 견인하는(demand-pull) 인플레 압력도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정부가 임금인상 요인을 최소화하는 노력과 함께 거시정책을 통해 물가상승 압박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