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O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 (3)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준비안된 노후는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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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산 포트폴리오 다시 짜라
은행지점장 출신 신재홍씨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생활비만 月 200만원 필요
가게 냈다 퇴직금 까먹고 부부 함께 벌지만 '빠듯'
학비ㆍ결혼자금 꿈도 못꿔
은행지점장 출신 신재홍씨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생활비만 月 200만원 필요
가게 냈다 퇴직금 까먹고 부부 함께 벌지만 '빠듯'
학비ㆍ결혼자금 꿈도 못꿔
"노후 준비요? 엄두도 못냈죠.그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은퇴한 뒤에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
2년 전 시중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한 신재홍씨(56).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중산층 베이비부머 은퇴자인 그는 비슷한 연배의 700만명과 함께 노후생활이라는 열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는 요즘 '잘못 살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앞으로 적어도 20년 이상 또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신씨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63년 태어난 같은 또래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궤적을 걸어왔다. 지방 출신인 그는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뒤 군 복무까지 마치고 1979년 당시 인기가 높던 은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30년을 묵묵히 일만 했다. 두 살 연하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딸 하나씩 뒀다. 은행에 다닐 때까지는 큰 부족함 없이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큰 딸은 대학졸업까지 시켰다. 시골 부모님에게도 매달 얼마씩의 생활비를 드렸다. 강남은 아니지만 서울에 105㎡짜리 아파트도 장만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인 신씨는 직장생활 동안 잘나가는 그룹에 속했다. 입사 동기들 가운데 승진이 빠른 편이었고 지점장도 비교적 일찍 됐다. 비록 임원을 달지는 못했지만 입사 동기들 중에서 70%가량이 지점장에도 오르지 못하고 퇴직한 것을 감안하면 잘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했다.
퇴직한 후 처음 6개월은 정말 좋았다. 일하는 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지인들도 만났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아내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1주일에 한 번은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명예퇴직금으로 3억여원을 받은데다 6개월 동안 매달 실업수당 120만원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돈 걱정도 별로 하지 않았다.
"퇴직한 후 1년 정도는 자유시간도 많고 가족과도 더 가까워져 흡족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보낼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지요. "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지난해부터 싹 사라졌다. 1년가량 놀고 지내다 보니 서서히 불안감이 몰려왔다. 앞으로 부부가 어림잡아 30년은 살텐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마침 한 중소기업에서 재무담당 임원 자리를 제안했다. 부푼 마음으로 출근했지만 두 달 만에 그만뒀다.
"은행 지점장 출신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대우가 극진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니 회사가 어렵다며 근무했던 은행에서 대출 좀 받아 달라고 사정하더군요. "
다시 일할 곳을 물색했지만 나이 탓에 좀처럼 마땅한 자리가 생기지 않았다. 고민 끝에 아내와 조그만 가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2억원을 투자해 일본식 국수집을 차렸다. 처음 두 달은 장사가 되는 듯싶더니 이마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투자했던 돈은 거의 날렸다.
현재 신씨의 가장 큰 걱정은 경제적 문제다. 당장은 남은 퇴직금 1억원으로 네 식구가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이 돈도 떨어지면 곧바로 생활이 빠듯해질 수밖에 없는 살림살이다. 신씨의 현재 매달 생활비는 200만원.여행이나 문화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도 이만큼 사용한다. 이것만 합쳐도 30년간 7억2000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아들과 딸 결혼자금으로 1억원을 잡으면 최소 8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들은 은행 지점장 출신이니 모아놓은 돈이 좀 있을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신씨가 갖고 있는 자산은 아파트 한 채(시가 4억5000만원)와 남은 퇴직금 1억원,국민연금뿐이다. 50대 가구의 평균 자산(3억6000만원)보다는 많지만 부부가 살아갈 집 한 채를 남겨두면 생활비를 해결할 고정 수입이라곤 없다.
결국 지난달 신씨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던 아내도 생활비에 보탠다며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파트타임 계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지만 그래도 수입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파트 관리비에 경조사비,보험료,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최소 한 달에 200만원은 들어가는데 벌이는 부부를 합쳐 130만원밖에 안 된다.
"다음 달이면 대학 다니다가 군대간 아들이 제대하는데 학비 마련이 걱정입니다. 자식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결혼자금은 스스로 알아서 마련하라고 얘기했습니다. "
신씨는 "자식 키우고 부모 모시는 데 매달리느라 정작 자신의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 바로 나"라며 "어떻게든 남은 삶을 버텨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