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성서와 역사, 그리고 神話의 '절묘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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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탄생 | 존 드레인 지음 | 서희연 옮김 | 옥당 | 456쪽 | 2만7000원
이처럼 호사스런 책이 있을까. 제목이 주는 엄숙주의가 첫장부터 사라진다. 성서(聖書)를 통해 인류문명사를 다뤘는데,내용이 충실할 뿐더러 곁들인 사진과 그래픽도 맛깔스럽다. 한마디로 《성경의 탄생》은 오랜만에 맛보는,상다리 부러지게 잘 차린 '지식의 성찬'이다.
이 책은 유사한 책들과 다른 몇 가지 매력을 갖고 있다. 우선 단순한 종교서이기를 거부한다. 성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 존 드레인은 구약성경에 바탕을 둔 헤브라이즘을 역설했는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독자들에겐 역사서 혹은 인문교양서쯤으로 읽힌다. 저자는 고증을 통한 역사와 철학,정치,문학 등을 총동원해 수천년에 걸친 서구문명을 종횡무진 탐사한다. 기독교를 역사 현상 속의 종교로 파악한 루돌프 볼트만보다 두어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성서와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조우했을까. 출애굽기 1장 11절을 보자.람세스 2세의 통치 아래 신음하던 유대 민족은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했다. 이때 배경이 된 도시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된다. 성경이 역사를 대신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과 히브리 성서의 율법은 상당히 유사하다. 함무라비 법전 196조항과 레위기 24장 19~20절은 '눈에는 눈,이에는 이'라는 보복법에 관한 것으로 당시의 사회상이 드러난다.
고대 로마의 여성들이 그리스나 유대 여성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렸다는 사실도 성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빌립보가 처음으로 개종시킨 루디아가 1세기 여성 상인이었던 게 그 좋은 예다.
성서와 신화의 만남도 흥미롭다. 노아의 홍수가 수메르 대홍수의 변종이라는 학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고대 히브리 민족이 그들의 신관(神觀)을 인근 국가들에 이해시키기 위해 당시 신화와 공통분모가 될 만한 것을 적절히 활용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창조신화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유산의 하나라는 사실에 비춰 보면 설득력 있다.
유대인들을 박해했던 로마제국이 스코틀랜드에서 페르시아만에 걸쳐 만든 도로망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빠르게 전파됐다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3000여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고향에 돌아가 어떤 활동을 했을지는 자명하다.
오늘날 검색어를 치면 1억개가 넘는 사이트가 올라오고 2500개의 언어로 번역된 책이 성서다. 이만한 보편성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은데 성서의 구성을 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율법과 예언을 모아놓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시와 희곡 등의 문학작품도 포함돼 있다. 기록한 시기와 저자,배경도 다 다르지만 한데 묶인 게 경이로울 정도다. 그만큼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의미를 한 가지 더 짚어보자.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공저 《예수는 신화다》에서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 허구라고 주장했는데 드레인은 이를 단박에 뒤집었다. 역사와 성서를 씨줄 · 날줄로 촘촘히 엮어 반박한 게 돋보인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