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 내변산은 '봉우리들이 100여리를 빙 둘러 있고 높고 큰 산이 첩첩이 싸여 있는 곳'(《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품 안에 월명암 내소사 등의 천년고찰을 품고 있어 트레킹과 함께 옛 가람의 향기도 느낄 수 있다.

변산면 중계리 사자동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지네처럼 기어가는 한줄기 외길을 따라 내변산 속으로 들어간다. 한때 내변산 4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던 실상사지에 이른다. 허물어진 석축들과 이삭을 떨어뜨린 억새들이 아름다운 폐허를 연출하고 있다. 햇볕과 달빛,바람조차 제 존재를 한껏 낮추고 감춘 채 공(空)의 세계를 구현하는 폐사지는 소멸과 제행무상을 설하는 한권의 대장경이다.

원불교를 창시한 박중빈이 5년간 기거하면서 교법을 반포했다는 '제법성지(制法聖地)'를 들러 다시 산길을 간다. 1925년 최남선이 걸었던 길이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모양을 닮는 것인가. 마음이 어느새 유장한 곡선이 돼 있다. 자연보호헌장탑 삼거리에서 월명암 가는 길로 접어든다.

◆번뇌와 시비가 절로 끊어지는 산상무쟁처 월명암

쌍선봉 아래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 월명암은 제 온갖 번뇌 망상을 흩날리는 눈보라에 실어 흩어버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월명암은 692년(신라 문무왕 12년)에 부설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부설전》에 따르면 부설은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에게 출가했다. 지리산 등지에서 영희 · 영조와 함께 수도하다가 오대산으로 문수도량 순례를 위해 가던 중 김제에서 구무원의 딸 묘화를 만나 혼인,등운과 월명 남매를 두었다. 오대산에서 돌아가는 길에 부설을 찾아온 영조 · 영희가 희롱하는 듯한 언사를 늘어놓았다. 결국 셋은 수행의 깊이를 거량하기 위해 물병 세 개를 달아놓고 하나씩 내리쳤는데 부설의 병은 깨졌으나 물은 그대로 허공에 있었다. 재가 수행자인 부설이 정통 수도승을 이긴 셈이다.

그러나 '시비와 분별을 모두 놓아버리고(分別是非都放下)/ 다만 내 마음의 부처님을 보고 스스로 귀의한다(但看心佛自歸依)'라는 그의 열반송 끝 구절을 곱씹어보면 그가 사는 내내 세상의 풍설에 적잖이 시달렸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마당 가에 서자 저 멀리 내변산 최고봉인 의상봉(509m)이 희끄무레하게 바라다보인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 나오는 불사의방장(不思議方丈)이 있는 봉우리다. 불사의방장은 '한번만 헛디디면 다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아찔한 절벽에 있는 진표율사의 수행처다. 왔던 길을 되짚어 직소폭포를 향해 내려간다. 길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정금나무 가막살나무 덜꿩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등을 만난다. 어릴 적 눈 덮힌 뒷산에 나무하러 가면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반겨주던 녀석들이다.

◆삶의 절정과 추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직소폭포

부안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겨울 가뭄을 모르는 직소폭포가 힘차게 폭포수를 쏟아 내리고 있다. 내가 직소폭포를 알게 된 것은 천양희 시인의 시 '직소포에 들다' 덕분이다. 이혼 후 문학도 버린 채 병고에 시달리던 시인은 1979년 여름 어느 날 자살을 결심하고 혼자 이곳을 찾아온다. 그러나 '높이 깨달아서 세속으로 돌아가라'는 '고오귀속(高悟歸俗)'이란 말을 떠올린 시인은 자살을 결행하지 않은 채 돌아선다.

'내가 그때 무엇을 높이 깨달을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좁은 내 생각을 바꾸고 세계를 넓게 보라는 죽비 소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풀이해봅니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차라리 낫겠다던 굽은 마음을 나는 직소폭포의 곧은 물줄기에 던져버리기로 했습니다.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20쪽)

시 '직소포에 들다'는 13년이라는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 1992년에야 세상에 태어났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 오르고 솔방울이 툭,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淨土)! 나는 늘 꿈꾸어 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환한 수궁을.(후략)'

시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 속 고통은 삭제한 채 다만 폭포의 장쾌한 이미지만을 보여줄 뿐이다. 시에서 '관음산'이라 한 것은 '내변산 관음봉'을 말한다.

재백이 고개를 넘고 원암공원 쪽으로 하산해 내소사로 들어간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지우개처럼 지상의 사물들을 차례로 지우더니 전나무들과 나만 오롯이 남겨놓는다. 어쩌면 이미지 과잉의 현대사회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건 쓸데 없는 이미지들을 비워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미지들이 사라진 자리에 깊은 침묵이 똬리를 튼다. 어느덧 부피를 의미하는 충만이란 단어가 영적인 느낌으로 발효한다.

◆문득 찾아온 충만감에 마음을 적시며

천왕문을 지나 1914년 실상사지에서 옮겨다 지은 2층 누각 봉래루에 다다른다. 늙은 봉래루가 세차게 퍼붓는 눈발에 몸이 가려운지 옆구리를 마구 긁고 있다. 누 밑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자 가인봉 아래 한떨기 연꽃처럼 핀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포의 끝에서 힘차게 뻗쳐오른 쇠서가 지붕 추녀를 한껏 떠받치고 있다.

대웅보전 꽃살문은 무채색의 소박한 문짝과 그 안에 조각된 빗모란연꽃살문 등 화려한 문살이 상반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잠시 꽃살문의 아비가 돼 점점 늙어가는 문살을 안타깝게 쓰다듬어 본다.

대웅전 천장 검은 널판에는 장구 북 해금 당비파 박 쟁 적 생황 향비파 태평소 나발 자바라 등 국악기가 그려져 있다. 악기들은 저마다 비천상의 천의처럼 휘날리는 흰줄과 붉은 줄을 달고 있다. 금방이라도 천상의 음률이 들려올 듯 생생한 그림들이다.

날것 그대로의 나뭇결을 드러낸 설선당의 부엌문 둥근 문미에 걸터앉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본다. 내 안에도 부서질 걸 빤히 알면서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저 눈발의 갈망이 숨죽이고 있다.

종각으로 걸음을 옮겨 '소리를 들으면 마음을 깨닫고 꽃이 피면 과실이 맺힌다(聞聲悟心花開實新)'라는 명문이 새겨진 동종을 들여다본다. 세상에 체(體)만 남고 용(用)이 없는 악기처럼 슬픈 건 없다. 이제 이 종의 소리는 1966년에 고 조규동 교수가 채록한 '한국의 범종'이라는 음반에서나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일주문을 걸어나올 때까지 눈발은 그치지 않는다. 길을 잃어야만 닿을 수 있는 눈의 화엄 바다가 멀지 않으리라.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 내변산 트레킹으로 추위 날리고… 뽕잎바지락죽으로 피로 풀고

◆ 맛집

백합과 바지락은 부안 앞바다에서 나는 대표적 어패류다. 변산면 대항리 원조바지락죽집(063-583-9763)은 뽕잎바지락죽으로 유명하다.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하루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이라고 감사하는 이가림 시 '바지락 줍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텅 빈 위장을 격려할 일이다. 바지락뽕잎죽 8000원,바지락뽕회무침 2만5000원(중)

◆ 내변산 트레킹

내변산 봉우리들은 그다지 높지 않아 겨울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트레킹 코스도 여러 갈래다.

1.내소사~원암 코스:내소사→관음봉→원암탐방지원센터(3.7㎞ 2시간) 내소사→관음봉 삼거리→내소사(3.7㎞ 1시간30분)

2.원암~남여치 코스:원암공원→재백이고개→직소폭포→자연보호헌장탑→월명암→남여치(7.8㎞ 4시간)

3.남여치~사자동 코스:남녀치→월명암→자연보호헌장탑→내변산탐방지원센터(5.5㎞ 2시간)

4.사자동~사자동 코스:사자동→자연보호헌장탑→직소폭포→자연보호헌장탑→사자동(5.5㎞ 2시간)

5.사자동~내소사 코스:내변산탐방지원센터→직소폭포→재백이고개→관음봉삼거리→내소사(6.2㎞ 3시간)

6.내소사~세봉 코스:내소사→관음봉→세봉→가마소→내변산탐방지원센터(6.2㎞ 3시간)